1. 영상을 준비해온 분은 아주 어렵게 구한 거라고 했다. 뜻 맞는 이 몇이 모여 지역사회가 어떻게 함께 잘 살까를 궁리하는 자리였다. KBS 스페셜 <행복해지는 법> 1부 ‘대한민국은 행복한가?’. 2011년 1월에 방영된 프로그램인데 지금은 한국방송 홈페이지에서 볼 수 없단다. 왜요? 저작권 문제라나 뭐라나 막아놓았네요. 마침 예전에 그걸 받아놓은 분을 만나서 운 좋게 구했지요. 대한민국은 행복해지는 법을 시청하는 것조차 어려운가? 주로 교육에 초점을 맞춘 기획이다. 그 중의 한 장면. “아이들에게 어느 대학에 가면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되고 연봉은 얼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확실히 동기부여가 됩니다.” 교육 컨설팅 전문가로 소개된 발언자는 확신에 찬 어조였다. 2. 야근을 하고 밤 10시 넘어 귀가한 아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묻는다. “아버지는 왜 제가 학교 다닐 때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은 얼마고, 판검사가 되면 얼마를 받고, 의사가 되면 얼마를 번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아들은 대기업 협력업체 신입사원이다. 아들이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대기업과 협력업
요즘 초중고교가 예비 소집일을 정해 학생들에게 새해 교과서를 배부중이다. 예전에는 교과서를 받으면 해질세라 묵은 달력으로 책을 감쌌다. 그리고 하얀 표지에 ‘국어’ 등의 제목을 공들여 적어 넣었다. 처음에는 이식받은 장기처럼 생경해도 시간이 지나면 나만의 손때로 친근해졌다. 새 교과서를 받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도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글자가 보급된 후 후세들을 선도하기 위한 교과서는 늘 있어왔다. 한자(漢字)권에 속했던 조선시대까지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예기, 춘추, 주역 등이 교과서 역할을 했고, 과거시험도 거기서 출제됐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교과서’라는 명칭이 처음 쓰인 때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다. 근대적 교육자료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당시, 정부가 직접 ‘국정교과서’를 편찬해 보급했다. 지금껏 애창되는 국민동요 ‘얼룩송아지’는 1948년 처음으로 국정 음악교과서에 수록됐다. ‘교과서’의 사전적 정의는 “학교에서 교과 과정에 따라 주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편찬한 책”이라고 한다. 학습용으로 학생과 교사가 함께 공부하는 교본이라는 딱딱한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교과서란 의미는 더욱 광의(廣義)적이고 깊은 속뜻을 갖는다. 우리에게
소금밭에 핀 연꽃 /김윤환 세파는 차갑고 엄마아빠는 바쁘다 무거운 가방 충혈된 눈 멈추지 않는 딸국질 연민보다 화가 먼저 생기는 아이들의 소금밭 사랑으로 밥상을 이루고 밥상으로 가족을 이룰 때 월화수목금토일 날마다 찾아오는 무지개빛 천사들 서로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네 바다가 떠난 소금밭에 천사들 옹기종기 연꽃을 피우고 있네 김윤환 시인의 소금밭에 핀 연꽃은 시화공단이란 상황에서 갯벌 세계의 정한과 가난한 이웃들의 애잔한 심경을 읽게 된다. 밥 한 톨 어디 소금밭 없이 단맛 쓴맛 짠맛의 서러움을 그냥 지나갈 수 있으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시선에 시인의 눈물 같은 편지다. 김윤환 시인은 실천문학에 노동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흥 은강교회에서 사역을 맡고 있으며, 연성지역아동센터 대표로 있다. 어려운 환경에 함몰된 공간과 시간에서 정서적 불안정한 아이들과 성장기를 걷는 천사들에게 치유문화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길 찾기에 분주하다. 차가운 세파에 누구라 할 것 없이 옹망졸망 가슴졸이는 새벽과 늦은 저녁 밤, 고단한 일상들의 허기진 노래는 그래서 더 아프다. 낯선 사람들의 터전에서 바다의 경계를 넘어 연꽃들로 화사한…
‘광교’가 시끄럽다. 수원시가 광교신도시 브랜드를 살린다는 논리로 영통구의 광교동 사용을 고수하면서다. 지난주에는 ‘광교동주민센터’ 개소식도 성대히 열었다. 이에 장안구 광교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광교산 자락에 터 잡고 살면서 천년 넘게 사용해 온 ‘광교’를 도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골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광교주민 말이 맞다. 영통구 광교동의 고집은 장안구 광교주민의 삶과 역사를 송두리째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광교산이 설령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없어지더라도 광교주민이 또 천년을 사용할 고유 마을이름이기 때문이다. 수원시 영통구 광교동의 생성 과정이 시청 홈페이지에 올라 있다. 행정동 명칭 설문조사, 수원시 지명위원회 개최, 수원시 조례규칙심의회 개최, 수원시의회 제291회 제1차 정례회 상정안 의결, 수원시 행정동 설치 조례 공포 등 행정적인 절차는 모두 거쳤다. 아니다. 요식적인 절차를 거쳤을 뿐이다. 광교동 이름을 놓고 장안구 광교주민이 제기한 ‘조례 무효 확인 소송’도 아직 결론 나지 않았다. 수원시가 영통구의 광교동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
‘영화감독 심형래’보다는 ‘바보 영구’가 친근하다. 그만큼 심형래의 바보 연기는 독보적으로, 코미디 역사에 남을 명불허전이었다. 지금이야 젊은 개그맨들이 대세지만 80년대 심형래는 코미디스타 중에서도 가장 빛났다. 그가 저녁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의 배꼽을 뺀 유행어는 다음날 직장에서 회자됐고, 골목에는 그의 연기를 따라하는 꼬마들로 넘쳐났다. 심형래의 천재성은 연기뿐 아니라 코미디 소재를 확장한데서도 나타난다. 정치풍자가 금기시되던 때, 그는 그저 지나치기 쉬운 일상에서 웃긴 이야기를 찾아냈다. 심지어 펭귄, 파리 등 동물이나 벌레들의 특성을 절묘하게 살린 코미디로 후배들의 전범(典範)이 됐다. 그래도 심형래 하면 바보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머리는 까치집을 짓고, 흐리멍덩한 눈, 그리고 콧물을 그린 얼굴로 “띠리리 띠리리” 하며 나타나면 보는 이들은 웃느라 뒤집어졌다. 웃긴 얼굴로도 모자라 어눌한 말투로 외친 “영구, 없~다”라는 유행어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요즘은 ‘뽀로로’가 아이들의 대통령이라지만 당시는 심형래가 장기 집권했다. 수많은 CF를 찍었고, 아이들의 눈높이로 출시한 영구시리즈 등의 영화 수십 편은 대박을 터트렸다. 이때부터 심형래는 ‘영화감독
공터일기 /최춘희 새벽에 깨어 눈뜨면 문득 사는 것이 지랄 같다 가슴 밑바닥 치고 올라오는 허기 목울대를 때리고 눈부신 꽃대 밀어 올리던 봄날 흔적 없다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하늘까지 넝쿨 뻗던, 푸른 적의 무성한 여름도 가버렸다 찬란한 단풍의 호시절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다 평생 몸 누일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아비 어서도 곁방살이 떠돈다는 풍문이다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 다짐한다는 히말라야 전설 속 어리석은 새처럼 노숙의 한평생 낙엽으로 발에 차인다 당겨 쓴 카드빚과 마이너스 통장의 막막함이 목줄을 당기고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세금 고지서 꽉 막힌 벽이 되어 막아서는 비상구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뿔뿔이 흩어진 황금빛 날들 기억도 희미한 채 녹슬어가고 먹구름의 공습 시작 된다 컨테이너 박스가 철거되고 곧 혹독한 유형(流刑)의 겨울이 올 것이다 -2012년 시와 경계 겨울호에서 최춘희 시인은 중년의 여류시인으로 삶을 잘 그려내는 시로 많은 울림을 준다. 공터일기는 절망의 노래가 아니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 오더라도 살아나겠다는 의지가 반어법처럼 이 시에 깔려 있다. 얼음장 쩡쩡 우는 산골에도 봄을 기다려 언 땅에 묻혀 숨을 고르는 꽃이 있다. 언 땅에 뿌리를
새해 벽두부터 국제정세가 불안하다. ‘재정절벽 방지법’ 제정으로 재정 위기 모면에 허둥대는 미국을 비롯 파업시위로 시끄러운 유로존의 그리스, 아랍의 민주화 진통 등 각종 돌발변수로 불안정한 나날의 연속이다. 한반도도 중국과 미국 강대국 사이에서 수십 년간 미래 예측이 어려운 파워게임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국부터 보자.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지난해 대통령 후보였던 롬니의 외교 정책 기류는 무력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인한 하드파워 경향인 반면,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하드파워에다 문화와 가치 예술 교육 등에 기초한 소프트파워를 결합한 측면이 강하다. 부시 대통령은 재임 당시 아프간을 무력으로 공격했고, 오바마 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외교정책 기조를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접목한 스마트파워로 변화해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외교정책에서 두 정당이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5세대 지도부로 질서 있게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 같지만 미래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국 최대의 정치비리 스캔들인 보시라이(薄熙來)사건은 공산당의 비밀스런 이면에 권력 암투
지난해 3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교인 과세’를 거론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힘깨나 쓰는 종교인들의 거센 반발로 주춤하더니 종교인 과세가 ‘없던 일’이 됐다. 이 일의 배경에는 청와대와 종교계가 있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16일 보도자료는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원칙적으로 종교인 과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도입 여부와 시행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원래는 기재부가 이달 중순 이후로 예정된 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종교인 과세 규정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으나 이젠 그 가능성이 거의 없다. 사실상 백지화다. 종교인 과세와 관련해 불교계 신문인 법보신문 최근호는 ‘종교인 과세 피할 이유 없다’는 글을 실었다. ‘이런 저런 주장이 교계로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기에 과세는 마땅하다’는 내용이다. 과세 문제에 가장 긍정적인 종교는 천주교다. 이미 1994년부터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신부와 수녀들이 소득을 신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계종을 비롯한 태고종, 천태종 등의 주요 종단도 이미 납세의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대학의 강단에서 요즘 학생들을 만나는 일에는 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숨어 있다. 몇 해 전에 허겁지겁 연구실로 뛰어온 학생이 있었다. 그것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뛰어 들어왔다. 부산 사투리를 진하게 섞어 쓰는 복학생이었다. 용건은 자신의 글이 신문에 게재되었는데, 그 글과 관련해서 국가 기관에서 곤란한 질문을 계속해 온다는 것이었다. 이 일의 발단은 글쓰기 수업 시간에 내준 과제였다. 일간신문에 독자투고를 통하여 신문 칼럼에 게재하면 가산점을 주겠다는 공약 때문이었다. 그 학생의 글은 국가 기관의 업무 관할을 서로 미루고 방관하는 공무원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게다가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학생이었기에 출신 지방에서부터 집요하게 질문공세에 시달렸다. 의외로 일은 쉽게 풀렸다. 칼럼을 게재한 언론사에서 그 또한 비판할 수 있는 주제라고 판단하여 더 이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막을 수 있었다. 대학 강의를 하다보면 학습 동기 유발에 학점만한 것이 없다. 강의실에 가득 찬 학생들은 신문 칼럼 글쓰기에 도전한다. 대학에서 칼럼 글쓰기 수업은 좋은 실습이 되는 셈이다. 이제는 매학기 꽤 많은 학생들의 글이 신문에 게재된다. 주제도 다양하다. 기부문화의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