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진로진학지원센터에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진로진학관련 강의를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교사들이 요청한다. 이 분은 달랐다. 적극적이고 유쾌했다. 대부분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중심에 놓고 경기도 교육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 분은 학교에서 소외받는 아이들을 대상에 놓고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계셨다. 처음 강의 요청을 받았을 때 다른 학교와 날짜가 겹쳐 거절했던 터였다. 긴 메일이 오가고 다시 오랜 통화를 하면서 마침내 마음이 움직였다. “우리사회의 기둥이 될 수 있는 대부분의 인재들을 학교에서 너무나 푸대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수한 몇몇의 성공사례를 보며 그 길에 목을 매고 불안해하는 우리사회의 정서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입시 정보,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리한 입시 정보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분은 접근 방식이 달랐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일정을 조정하고 있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부모교육은 인기 있는 강사를 섭외해서 뭔가 학부모들에게 줬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교육기관의 논리로 만들어진 입시설명회가 학교
1991년 3월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대구 와룡산 인근에서 실종된 이른바 ‘개구리 소년’들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2002년 오늘 발견됐다. 유골이 발견된 곳은 대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인근 와룡산 중턱이었다. 유골을 처음 발견한 50대 남성은 도토리를 줍기 위해 주위를 살피던 중 사람의 뼈가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5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이외에 어린이용 신발 다섯 켤레와 운동복 등 옷가지 5점도 함께 발견했다. 개구리 소년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지만 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숱한 의문점은 풀리지 않았다.
어른들만 이용하는줄 알았던 불법 사설 스포츠토토에 청소년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다.(본보 25일자 6면) 이들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의 경우 가입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또 스마트폰으로 사설 스포츠토토에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소년들의 접속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사설 스포츠토토에 접속할 수 있는 종목이 국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물론이고 해외 야구, 축구 등으로 다양해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성인들만 접속하는 줄 알았던 이들 사이트에 접속해보면 자신이 학생이라고 밝힌 게시글이 상당수 눈에 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에 쉽게 빠져드는 것을 보면 이들 사설 스포츠토토에 한번 접속한 경험이 있으면 또다시 찾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진행하는 스포츠토토는 축구, 야구, 농구 골프, 씨름 등의 경기를 대상으로 게임 참가자가 경기결과를 예측·베팅해 결과에 따라 배당금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소년이 참가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불법 사설 스포츠토토의 경우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로 사실상 가입제한 없이 청소년들이 휴대폰 번호와 자신이 개설한 계좌번호만 있
안산시의 추모공원 건립 후보지 선정과 관련해 안산화장터반대투쟁위원회(이하 반투위)에서 앞장서 활동해온 주민이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본보는 그간 끊임없는 보도를 통해 안산추모공원 문제를 예의주시해 왔다. 반투위의 주장도 충실히 보도했고 추모공원을 추진하는 안산추모공원건립위원회 위원의 칼럼도 가감 없이 게재했다. 사설을 통해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결과를 얻으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소통은 이뤄지지 않았고 불통의 결과 절망을 느낀 주민이 음독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 반투위의 행동은 더 격렬해 질 것이다. 안타깝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것만은 막아야 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고인의 형이 한 말은 비수가 돼 가슴에 꽂힌다. “다함께 잘 살자는 것이 행정인데, 시는 후보지를 선정해 발표하고서도 반대 주민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일방적인 화장장 건립을 추진해 양상동 주민 모두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생하고 있다”고.(본보 25일자 7면) 그렇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소통이다. 고인의 형은 이렇게 덧붙인다. “화장장 건립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김철민 시장이 끝
“증말 저런데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나는 글쎄 지하에 산다구.” 출근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 내게 머리카락을 연탄재같이 날리며 다가온 할머니 나는 차마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할머니가 가리키는 손짓을 따라 아파트들을 바라보다가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중얼거렸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구려.’ 동냥을 주려고 호주머니며 지갑을 뒤졌지만 손수건마저 없었던 투르게네프의 심정이 어땠을까? “용서하세요. 할머니. 가진 것이 없네요.” 나는 말하지 못했다 가방 속에는 시집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 맹문재 ‘완전에 가까운 결단’ 중에서/2009년/도사출판 갈무리 시가 한 그릇 밥이었음 좋겠다는 어떤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한 그릇 밥도 못되는 시를 쓰느라 몸을 상해가며 고심하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생존의 조건을 虛와 實로 양분화 한다면 다른 이들이 실을 쫓아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몰 때 허를 찾아 구두끈을 매는 사람들.늘 골똘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는 사람들, 뭔가를 자신에게 청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가진 것이 없어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 그러나 시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이다. 요즘 세대는 그때도 우리 군대가 있었느냐고 묻겠지만 엄연히 정규 군대로서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건 열혈청년들로 구성됐다. 1940년 9월 중국 충칭에서 발대한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자 조국해방의 선봉이었다. 실로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해산 당한지 33년만의 가져보는 우리 군대였다. 민족주의 계열을 중심으로 창립된 광복군은 좌파계열의 조선의용대 등이 합류하고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일본군을 탈영한 젊은이들이 합세, 독자적인 진격작전을 계획할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무엇보다 좌우 이념대립과 헤게모니 싸움 등의 불화에도 하나로 뭉쳐 무력으로 당당히 조국을 되찾겠다는 광복군의 정신은 지금도 국군의 뜨거운 피로 이어져 흐르고 있다. 광복이후 정치와 학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장준하 선생과 김준엽 전 고려대총장도 광복군출신인데, 이들은 생전 후학들에게 전격적인 한반도 침투작전을 앞두고 일본의 항복으로 인해 자주적 광복을 성취하지 못했음을 크게 한탄했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만약’ 임정소속의 광복군이 진주해 한반도의 일본군을 물리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면…
한서(漢書)라는 책에는 ‘덕을 쌓고 덕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번창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된다’라고 했다. 사람의 성품이란 누구나 그 덕을 잘 닦아보고 싶어하지 않는 자가 없다. 그러나 그 덕을 잘 기르지 못하는 것은 사사로운 이익(利益)이 그 덕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자는 이(利)라는 글자의 소리만 들어도 자기명예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利)라는 말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오히려 덕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는데(言利名尙羞之), 하물며 이에 걸터앉아 이(利)를 구하는 자에게 있어서랴(況居而求利者乎).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마치 비바람이 풀을 눕게 하는 것과 같다(上之變下 猶風之靡草也). 따라서 임금이 된 자는 덕(德)을 귀하게 여김을 널리 밝히고, 이(利)를 천하게 여긴다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인도해야 한다(故爲人君者 明貴德 而賤利以道下). 그렇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악을 지어도 이를 저지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下之爲惡 尙不可止). 위정자(爲政者)나 소위 지도자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던지는 덕목으로, 순덕(順德)의 바탕 위에서 이끌어가야만 순리와 순서가 바로 선다는 암시이다. 옛말에도 세상의
지방 간 격차가 심화되고 사회 양극화로 인해 소외되는 계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지금, 지방자치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역 주민이 주인이 돼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지역의 자산을 충분히 활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민선 지방자치의 가장 중대한 책무가 됐다. 하지만 이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돈 문제다. 항상 중앙정부에 손을 벌려야 하는 지방재정의 열악한 현실은 지방자치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쓰는 돈의 비율은 44대 56 정도지만, 벌어들이는 세입은 80대 20으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보다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의존성이 이렇게 높다 보니 뭐 하나 하려 해도 항상 중앙정부에 눈치를 봐야 하고 지자체 스스로도 재정 개선을 위한 자구노력보단 중앙에 로비를 벌이는 데 혈안이 되는 등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게다가 지방재정 규모는 1995년 47조원에서 2010년 141조원으로 3배 가량 증가했지만 재정자립도는 2001년 57.6%에서 2005년 56.2%, 2010년 52.2%로 하락하는 추세이며,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는 지방채무도 급증해 2008년 1
인구 110만 도시의 수원은 정조의 사상과 꿈이 담겨 있다. 수원의 한가운데에는 실사구시의 실학자 정조의 정신이 깃든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원 화성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원 재래시장 위쪽의 언덕에 들어선 수원제일교회는 올해로 60년을 맞이하는 교회다. 이 교회의 종탑에 오르면 수원 화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데, 필자도 어느 날 수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교회를 찾아 종탑을 올라가 봤다. 수원제일교회 종탑은 수원시와 수원제일교회가 협의해 8월 중 공사가 진행돼 9월에 개관식을 가졌다. 베이징의 톈안먼과 파리의 에펠 탑은 해당 지역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만들었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은 수원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생겨난 셈이니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또 현재 이 일대에는 골목길 벽화와 5곳의 재래시장과 연계되는 관광코스가 개발되고 있으니, 수원을 대표하는 새로운 관광 명소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체험과 먹거리를 통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날이 곧 다가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원제일교
부동산 정책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과감히 바꿔야 산다. 수박 겉 핥기 식이 아닌 피부에 와 닿는 규제를 풀어 투자심리를 살려야 한다. 경제 뇌관이 된 하우스푸어, 깡통주택 등은 금융부실, 집값하락, 경기침체,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져 국민경제, 생활경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주택시장에 이어 토지시장까지 복합적인 규제완화가 절실하다. 부동산 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강제적 규제의 후유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원인분석에 있어 실무자는 제쳐 놓고 이론적인 탁상공론만으로 정책을 수렴한 결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현실이 돼 버렸다. 정부의 정확한 진단 없이 늑장 대응이 문제를 더 키웠다. 그동안 부동산대책 수차례에 걸쳐 발표를 했지만 발표 때마다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 애초에 국민들 가슴에 와 닿는 속 시원한 대책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오랜 세월동안 찔끔거린 대책이 뇌성만 키우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실망에 실망을 거듭해 진이 다 빠져버린 상태가 됐다. 임기 시작한 현 정부와 청와대, 경제대통령은 지하벙커에서 수개월동안 경제 살리기 대책회의를 한 결과가 무색하기만 하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