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공손추가 孟子(맹자)에게 ‘어찌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으신 연유가 궁금하다’며 물으니 “가르치는 사람은 바르게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자연히 노여움이 생기게 돼 부모자식간의 정이 멀어지게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자식은 서로 바꿔서 가르치게 된 것이다. 부자간에 잘못을 지적하거나 꾸짖게 되면 불행하게 된다”고 대답해 주었다. 사실이다. 조선시대 이모씨라는 사람은 어려서 무척 난잡하여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아버지는 명문가의 선비집안으로 자식을 잘 가르치려 하였으나 용이치 않아 어두운 밤에 산골 훈장을 찾아가 자식 놈 사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자 훈장은 무서운 엄나무 가시를 매 삼아 교육시켜 과거 급제에 오르게 하였다. 그의 부모는 명문가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고 급제하여 집에 오는 길목에 엄나무가 있으면 예를 차려 큰 절을 올렸다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양택동 한국서예박물관장
수원합창페스티벌 30일 팡파르 여름의 끝자락, 수원 전역을 아름다운 하모니로 물들인 합창의 축제가 오는 30일 시민들을 찾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인 인성(Voice)이 표현해내는 감동과 화합의 축제 ‘수원합창페스티벌’은 올해 수원시립합창단 창단 30주년을 맞아 “우정의 하모니, 수원을 노래하다”라는 주제로 열린다. 30회 이상의 공연, 2천여명의 예술진이 참여하는 이번 합창 페스티벌은 특히 수원을 주제로 한 시를 바탕으로 수원과 인근 지역 합창단이 함께 하는 한국합창 Big5 공연이 페스티벌의 감성을 더한다. 또 9월 중 수원에서 개최되는 ‘생태교통페스티벌’과 연계한 공연 프로그램은 수원을 축제의 도시로 물들이게 된다. ▲ 8월의 마지막을 물들이다 30일, 인계동의 수원제1야외음악당에서 펼쳐지는 개막공연은 소프라노 이영숙, 베이스 송필화의 공연을 시작으로 코리아 비보이 챔피언십을 비롯한 국내외 다양한 비보이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생동감’의 무대가 이어진다. 또 유명재즈보컬리스트 하이진 단장이 이끄는 &lsq
그 여름의 낮잠 /최기순 장맛비가 석 달 열흘 쏟아지고 앞산이 무너져 붉은 흙이 가슴을 덮고 어머니는 장독대가 떠내려간다고 발을 굴렀다 흙탕물 속에서 닭 벼슬 같은 맨드라미가 깜빡거리며 떠내려갔다 저 맨드라미를 건져다가 어머니의 장독대에 심어드려야 하는데 아무리 버둥거려도 발이 땅에 닿질 않았다 최기순 시집 『음표들의 집』/푸른사상 시선 25 올해는 어느 때보다 장마가 길고 지루했다. 끈적거리고 후텁지근한 것은 둘째고 불어난 빗물로 인해 사람 사는 세상엔 갖가지 사연들이 많았다. 산이 절개되고 토사물이 쏟아진다. 집을 덮쳐 무너지고 불어난 물에 사람들이 속수무책 떠내려가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물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생 가슴에 슬픔을 맞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비는 공포다. 비가 올 때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마조마 안절부절 한다. 비가 어떤 사람들에겐 즐거운 추억이 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평생의 트라우마다. 꿈속에서도 끔찍한 장면은 반복되고 ‘아무리 버둥거려도 발이 땅에 닿질 않는’ 꿈의 표의가 등장하는 것이다. /성향숙 시인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라는 산수유 CF로 잘 알려진 김영식 회장이 최근 모 방송에 출연, 빚 독촉으로 겪었던 고통의 나날을 공개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지금은 스타도 됐고 돈도 번 그는 빚 독촉을 받을 때마다 유서를 쓴 건 셀 수도 없고, 9층 사무실에서 창문을 열고 떨어질 생각도 몇 번이나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빚 독촉에 동원되는 갖가지 방법이 얼마나 악랄한지 죽음만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시달려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모른다고도 했다. 비정한 빚 독촉은 개인의 죽음은 물론 가정까지 파탄에 이르게 하기 일쑤다. 여기서 채무자의 인권은 찾아 볼 수 없다. 방문,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를 통한 독촉은 이미 고전이다. 자녀의 입학·졸업식장, 결혼식장을 찾아가 공개적으로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행위도 다반사다. ‘아이들 학교 못 다니게 하겠다’ 또는 ‘아이들 등하교길 조심하라’며 가족을 들먹여 협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장례식장에 찾아가 무언(無言)의 시위와 위협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교묘함을 동반한 수법을 쓰기도 한다. 봉투에 혐오감을 주는 붉은색 글
찜통 폭염이다. 연일 전력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오늘도 전력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최악의 전력수급 상황을 보일 거라 예상하고 ‘순환단전’ 또는 ‘블랙아웃’ 등 최악의 사태를 언급했다. 더하여 긴급 절전 운운하며 폭염주의보 속에서 ‘닥절’(닥치고 절전)을 강요하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칠 최대의 재앙이 될 대정전인 블랙아웃이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에 이르자 나는 지난해 태풍이 들이닥쳤을 때 정전을 대비하여 준비해두었던 양초, 갑자기 벌어진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들어 주었던 양초 한 자루가 생각났다. 사람들은 늘 넘치게 풍부할 때 감사할 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언제든지 스위치만 올리면 켜지는 전등, 아침에 눈만 뜨면 떠오르는 태양이 비추어주는 그 빛, 그 온기의 고마움을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고 요즘처럼 대정전을 떠들어대며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어야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 작은 양초 한 자루를 떠올리니 말이다. 서랍장 구석에서 찾아낸 양초를 촛대에 꽂아 불을 붙여 보았다. 깜빡 깜빡이며 제 몸을 태워 빛을 만들어내고 있는 양초 한 자루, 벽에 제 몸 그림자를 이글거
한때 영어하면 성문, 수학하면 정석하던 시절이 있었다. 꿈에 그리던 명문대 입학과 고성적을 보장하는 수험생들의 바이블로 불린 그 두꺼운 책들과 씨름하던 학창시절에도 성문이건 정석이건 출발은 바로 시리즈의 맨 앞에 오던 ‘기본’에서 시작했다. 이해가 얼마나 어렵던지 며칠 만에 내팽개치고 다시 기초부터 시작하던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지만 중3, 고1부터 고3 끝나는 순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성문과 정석 시리즈의 ‘기본’은 소위 ‘베스트프렌드’였다. 뜬금없는 기초와 기본 얘기는 연일 기세를 떨치는 폭염과 사상 최장의 열대야 속에 에어컨조차 제대로 켜지 못하는 이 여름을 보내는 내내 화두가 됐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전력경보 속에 장관이 직접 대국민담화로 절전을 호소하던 그 3일의 악몽이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전력위기는 바로 기본이 문제였다. 조작된 시험성적서에 각종 부조리가 맞물린 ‘비리종합세트’로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대정전’의 악몽이라는 또 다른 단면은 아무리 참고 이해하려 해도 단단히 맺힌 분통이 쉽사리 풀리지 않
새누리당이 내놓은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사용량 절약은 유도하지 못하면서 저소득층 부담은 오히려 커질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누진제를 현행 6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하는 것은 좋으나, 항상 오르는 추세인 연료비를 요금에 연동하면 저소득층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200~600㎾h 구간을 단일요금으로 하면, 가정용 소비전력으로는 상당히 많은 양인 600㎾h까지 전기를 쓰는 가구가 늘어날 수 있다. 요금 부담을 줄여주면서 전기 절약을 유도하겠다는 개편 취지를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셈이다. 더 큰 비판은 왜 항상 가정용 전기요금만 먼저 문제 삼느냐는 점이다. 전체 전력 가운데 가정에서 쓰는 전력 비율은 15~20%에 불과하다. 사리로 따지면, 절반이 넘는 50~60%를 사용하는 산업용 요금 개편이 먼저 이루어진 다음에 가정용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 더구나 산업용은 가정용 요금의 절반 이하 혜택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은 일단 가정용을 개편한 다음에 산업용을 손질하겠다고 밝혔으나, 순서가 뒤집혔기 때문에 비판이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 전기 절약도 가정 먼저, 요금 개편도 가정용 먼저이니 쌓인 불만이 터져
1950년 10월 2일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전문을 보내고 박일우를 직접 베이징에 파견하여 중국의 참전을 요청했다. 당시 중국공산당의 간부들은 대부분 신정부 출범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옆집에 불이 났으니, 그 불이 옮겨 붙기 전에 나가 싸워야 한다”며 참전을 강행했다. 중국은 240만 명이 참전하면서 엄청난 전쟁 물자를 지원해야 했고, 자신의 장남 마오안잉을 비롯한 40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전쟁지원은 이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더 큰 손실은 미국을 적으로 해서 싸운 전쟁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전후 중국을 철저히 봉쇄했고, 중국은 ‘죽(竹)의 장막’을 치고 한동안 세계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다. 오진용 교수가 ‘김일성시대의 중소와 남북한’에서 표현한 대로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에 중국만이 가난한 아웃사이더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북한은 주체사상의 실현을 위해 중국군의 참전을 은폐해야 했다. 평양의 ‘조선전쟁기념관’에는 김일성이 손을 들어…
최근 막사발 작가로 유명한 도예가로서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 위원장 김용문씨가 고향인 오산시를 떠났다. 아예 주민등록 주소지까지 옮겨버렸으니 아주 경기도를 떠난 것이다. 그가 간 곳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다. 완주군은 전주시를 감싸고 있는 인구 9만도 채 되지 않는 곳이다. 김 작가는 주지하다시피 막사발의 장인으로 현재 터키 하제테페 국립대학 교수이자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 위원장이다. 매년 세계 유수 도자작가들과 함께 가마 쟁임과 장작불을 지피며 문화예술 나눔의 장을 열고 있다. 그런 김 작가가 지난해 태어나고 자란 오산시를 등지고 완주로 이전해 세계 막사발 축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용문 작가는 왜 경기도를 떠나 낯선 곳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그의 작품 활동과, 필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 전통 막사발의 세계화를 위한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의 지속적인 개최를 위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경기도에서는 그의 이런 포부를 잘 알아주지 않았다. 물론 외면만 한 것은 아니다. 고향 오산시에서는 작으나마 예산을 마련해 행사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행사를 치를 때마다 그의 빚은 늘어났다. 세계 1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과 함께 행사를 운영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