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사람들이 꽉 들어찬 화물열차가 수용소에 들어왔어.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판자들이 부서져 작은 구멍이 나 있더군. 그런데 갑자기 한 구멍을 통해 어머니의 모자와 아버지의 안경과 미사의 창백한 얼굴이 보이는 거야. 나는 소리지르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나를 보았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대재앙이야. 지난 24시간 동안 유대인들이 연이은 해일처럼 밀려들어와 수용소가 넘쳐나고 있어. 네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오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미샤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 아버지는 완전히 무기력하고, 만 하루 만에 웃옷의 칼라가 훌쩍 커진 것처럼 보이고, 까칠한 흰 수염이 애처로워. 하지만 우리가 오늘 아침 빗속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여호수아기에서 놀라운 인용구를 찾아냈을 때 아버지는 작은 성경을 흔들어댔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 큰 막사에 있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 찬 인간 창고 같아. 좁은 철제 침상 하나에 세 사람씩 자고, 매트리스도 없고 물건을 둘 곳도 없고, 아이들은 겁먹고 소리를 질러대서 정말 비참한 상태야. 나는 최선을 다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려 노력할 거고, 더 기운을 내고 용감해질 거야. 이따금 암흑 말고
작업실에 놀러 온 음악광 친구가 유튜브 뮤직으로 이것저것 찾아 듣는다. 귀에 익으면서 낯선 선율이 심장을 훑고 지나간다. 무슨 음악인가 물었다. “시타르” “라비 샹카?” “아니 딸. 아누쉬카 샹카. 시타르 별로라면서?” “딸 건 좋네 ” 월드뮤직이 낯선 이에게 선문답으로 들리겠다. 정리하자면 친구가 틀었던 음악은 아누쉬카 샹카(Anoushka Shanker)의 시타르(인도전통악기) 연주인데 그의 아버지 라비 샹카(Ravi Shanker 1920-2012)는 세계적인 시타르 연주자다. 대가인 라비 샹카의 시타르 연주에 관심 보이지 않았던 내가 딸의 시타르 연주에 반응하자 의아했던 것이다. 친구가 음악광다운 한 마디를 보탠다. “하긴 월드뮤직은 전통, 민속만 고집하면 안 돼. 섞어야지” 시타르를 처음 만난 건 20년 전, 인도 배낭여행할 때다. 북서부 타르 사막 도시인 자이살메르까지 흘러들어 갔는데 초여름 비수기라 동행 여행자가 나 말고 서너 명뿐이었다. 가이드와 여행자들이 쉴 곳을 찾아 가는데 사막 풍경을 더 보겠다고 혼자 남았다. 사막은 처음이었다. 건물과 사람과 소음이 일상이던 도시인에게 ‘아무것도 없는 곳’이 주는 충격은 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나는 수용소에 내가 가든 다른 누가 가든 상관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흥분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체념의 미소를 지은 채 파멸의 품속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럴때 조차 궁극적으로 그들은 우리에게서 중요한 것을 빼앗을 수 없음을 확실히 알기에 버틸 힘을 얻는다. 나는 결코 피학증 같은 것 때문에 수용소에 가려하거나 지난 몇 년간 내 경험의 기반이었던 소중한 것들에서 분리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일에서 내가 면제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많고 남에게 줄 것이 많기 때문에 숨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계속 말한다. 하지만 내가 남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 줄 수 있다는 걸 안다. 친구들과 함께 여기에 있듯 강제수용소에 있든 상관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하기에는 자기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순전히 교만일 뿐이다. 그리고 만일 신도 내가 할
류시화. 그를 생각하면 ‘인도’가 떠오른다.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라는 건 진즉 알았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사람을 90년대 이후 불어온 인도 열풍에 편승한 상업주의 작가라고 의심해왔다. 그가 쓴, 이름이 생각 안 나는 인도 여행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중영합적인 책이구나"라는 심증이 더 강해졌다. 며칠 전 딸아이 보라고 도서관에서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대신 빌렸다. 반납하기 전에 소파 위에 놓인 책을 심심풀이로 들쳐봤다. 의외로 흡인력이 강했다. 술술 읽혀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말 그대로 마음이 '덜컥' 흔들리는 듯 충격을 받았다. 47페이지 '세 가지 만트라' 대목이었다. 왜 그랬을까. 류시화가 명상 수행을 위해 북인도 히말라야 산록을 찾았을 때 이야기다. 산모퉁이 납작바위 위에서 명상에 빠진 요기(요가수행자) 싯다 바바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 순간 작가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완벽한' 스승임을 직감하고 반 어거지로 제자가 된다. 문제는 이 스승이 제대로 된 명상은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물 길어오기, 밭 갈기, 땔감용 소똥 주워오기 등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온종일 일만…
- ‘금기’가 된 죽은 자의 이름 인류학, 민속학, 종교학, 문학 그리고 예술 등의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친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 G. Frazer)가 쓴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는 여러 “금기(taboo)”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가운데는 호주의 어느 원주민 공동체에서 죽은 이의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경우가 보고된다. 망령(亡靈)에 대한 공포 때문인데 이는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관습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픔과 공포 그리고 기억이 희미해지게 마련이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의 이름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붙여져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부족은 아기가 탄생한 지 7일 뒤 여러 조상의 이름을 의미하는 쌀들을 물잔에 떨어뜨려 그 쌀의 움직임을 보고 아기와 인연이 닿는다고 여긴 이름을 선택한다고 한다. 금기에도 수명이 있고 그건 시간의 통로를 지나 사회적 생명을 얻어 재생되기도 하는 것이다. 《황금가지》의 부제는 “마술과 종교에 대한 연구(A Study in Magic and Religion)”라고 되어 있다. 그 제목대로 이 책은 아득한 시절에 살았던 인간의 원시적 정신사를 다룬 것이기도 하
슬픔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슬픔이 짓누르는 것 같은 때에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매우 강하고, 틀림없이 슬픔은 우리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슬픔으로부터 도망가면 안 되고 어른스럽게 슬픔을 견뎌야 한다. 증오를 통해 슬픔을 줄이려 하지 말고, 모든 독일의 어머니들에게 복수하려 하지도 마라. 그들도 아들이 죽임 당하고 살해당해서 슬픔을 겪는 어머니일 뿐이다. 우리 안에 슬픔을 담기에 마땅한 공간과 안식처를 마련하라. 모든 사람이 슬픔을 정직하고 용감하게 견디면 세상을 가득 채운 슬픔이 누그러질 것이다. 반면에 슬픔이 머물 수 있는 적절한 안식처를 준비하지 않고 내면을 대부분 증오와 복수할 생각으로 채우면, 거리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슬픔이 생겨날 것이고, 이 세상에서 슬픔이 결코 그치기는커녕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전쟁은 근원에 있는 인간, 사랑하는 데 실패한 인간, 끔찍한 결과를 맞은 인간, 비탄과 슬픔에 빠진 인간을 나타낸다. 우리가 직시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을 포기한다면, 즉 엄연한 사실이 우리의 머릿속과 가슴속에 깃들 곳을 마련하여, 그것이 자리 잡고 우리를 분발시킴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의
‘침구동인’ 이라는 것이 있다. 그 청동으로(또는 청동처럼 색을 입혀) 만든 인체 모형은 혹자는 한의원에 진료를 받을 때 한 번씩 보았을 수도 있고 TV 드라마에서 한의원의 배경으로 봤을 법도 한 풍경이지만 실제는 침구경락학의 요약지도라고 할 수 있다. 예전의(긴 시간 전의) 침구학의 연구자들이 인체의 경락과 경혈을 청동으로 만든 인체모형에 새겨 표시해 놓았던 것인데 세월이 흘러 현대에는 보급형 플라스틱 인체모형에 WHO에서 정한 국제표준경혈명의 영문이 새겨져 있기도 하고 최근은 경혈경락 어플 속의 3D 모형으로 컴퓨터나 모바일 속의 이미지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내용은 긴 세월 동안 변함이 거의 없다. 나의 진료실 한켠에도 꽤 큰 ‘침구동인’이 그렇게 시간을 건너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그 동인을 한의원에 ‘침 한번 맞으러’ 치료를 받으러 왔지만 한 번도 침 치료를 받은 적 없는 이들에게 동인의 몸에 새겨진 오랜 지혜의 흔적과 함께 소개한다. 환자들 중에서도 한의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 오랜시간 공부를 한 분들도 만나기도 하고 모 대학의 피부미용학 수업시간에 안면의 해부학과 함께 경락과 경혈을 가르치는 분의 경락학에 관한 지식을 뽐내는 것을 접하기
최근 북한 동향중에 우리가 궁금해하는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김정은 총비서가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비상방역태세하에서 당 간부들의 태만과 무능으로 발생했다고 하는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극심한 식량위기를 토로하면서 인민들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직접 서명해서 시행했다는 ‘특별 명령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척 수척해 졌다고 북한 매체에서 보도되고 있는 김정은 총비서의 건강상태는 어떤지가 대표적인 궁금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대화가 활성화되고 북한이 개방사회라면 이러한 우리의 궁금증은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과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해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이 직접 탐색하는 휴민트 정보에 근거하거나 통신 감청 등 최첨단 장비를 통한 시진트 정보를 통한 방법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소원한 상황에서는 휴민트 정보는 기대하기 어렵고 시진트 정보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어 매우 제한적이다. 남북관계가 소원할 때 북한 동향을 파악하는 방법은 북한의 방송 보도나 대북소식통이라고 하는 북
이제 갓 마흔이다. 스물아홉에 고향 함경도 청진을 떠났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처럼 그도 몇 개국을 경유하여 목적지 서울에 도착했다. 태영호나 지성호처럼 황송한 신분(국회의원)이 된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어렵게 산다.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이화여대 국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에서 공직자로 일하던 남편을 만나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2년간 일본에 살면서 남편과 함께 통일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신촌에서 네 살 된 딸 하나와 다복하게 살고 있다. 객관적으로, 탈북민들 가운데 이 정도로 안착한 경우는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빛나는 명함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좀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는 정치 경제 분야에서 세속적으로 크게 성공한 소수의 탈북자들과 질이 다른 성취를 해왔다. 이는 점점 더 탄탄해지고 규모도 더 확장되고 있다. 그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 뒤에, 그에게 도움될 천사들을 모으는 중이다. 지금 남쪽에는, 목숨 걸고 가족과 삶의 터전을 떠난 뒤, 과장 없이 지옥을 건너서 마침내 서울에 들어온 북쪽 이주민들은 3만 5000명(2020년 기준)이다. 그 중 2/3는 여성이다. 그 가운데 대학생은 2천 명이 넘는다.
“그렇게 많은 (유대인) 동포들이 고통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내면의 준비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티는 (집단 학살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마음을 가누고 깊고 고요한 중심을 찾는 법을 배웠다. 환상에 빠지려는 유혹에 맞서 투쟁했다. 그리고 상황이 악화되자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심리적 연습(mental rehersal)을 했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예상함으로써 그 힘을 빼앗을 수 있었다. 오늘 진정으로 경험한 것은 티데의 방 한 구석에 있는 목련이었다.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놀란 나는 그 자리에 뻣뻣이 굳어버렸다. 거의 5분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바닥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 거기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차마 그 꽃들 곁을 떠날 수 없어서 손가락 끝으로 꽃잎을 아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티데에게 “매일 네 방에 와서 이 목련을 보면 안 될까?”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젯밤 비를 맞으면서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먼 길을 걸어 집에 왔다. 그리고 꽃가게를 찾아 길을 조금 돌아가서 큰 장미꽃 다발을 사 왔다. 그리고 그 꽃들이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