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식별을 위한 주민등록증 제도의 기원은 조선 시대 호패제도다. 신분 증명 신상을 적은 호패를 양반에서 노비에 이르기까지 16세 이상 모든 남자가 가지고 다녀서다. 6·25전쟁 이후에는 시·도민증이 이를 대신했다. 지금의 주민등록증이 생겨난 건 1968년 11월 21일이다. 같은해 1월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의 청와대 인근 침투가 계기다. 사진·이름과 함께 기록된 주민 번호는 처음엔 단순한 12자리였으나 1975년부터 생년월일을 포함한 13자리로 바뀌었다. 그중 앞 6자리는 생년월일, 뒤 7자리 첫 번째 숫자는 성별을 나타낸다. 1과 3은 남자, 2와 4는 여자를 의미한다. 두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는 출생 신고가 이뤄진 읍·면·동의 고유번호다. 여섯 번째는 성씨를 번호로 표시한 것이고, 마지막은 앞의 여섯 숫자가 정확히 조합됐는지 확인하는 암호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나이와 생일은 물론 어디서 태어났는지까지 확인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주민번호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사고가 발생,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해 왔다.특히 위·변조로 인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초고속 인터넷 확산 이후 범죄 규모와 피해 범위는 더욱 커졌다. 주민번호 유출사례가 점점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 마음을 급하게 한다. 마지막이란 늘 다그치는 습성이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는 힘이 있는지 느슨했던 마음도 마지막이란 단어 앞에선 뒤를 돌아보게 한다.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누구는 24시간이 모자라 잠잘 시간을 쪼개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시간이 안가서 하루가 지겹고 힘들다고도 한다. 음악학원을 방문했다. 오후에 방문했는데 벽시계는 11시 15분을 지나고 있다. 몇 번 시계를 힐끔거리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원장이 그 시계 틀린다며 시간을 늦게 맞춰놓은 이유를 설명한다. 수강생이 수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시간에 더 집중한다고 한다. 학원을 방문한 시간과 퇴원할 시간을 재느라 시계만 쳐다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시간을 다르게 해 놓았다는 설명이다. 피아노 치기는 싫고 친구들과 놀고는 싶은데 방과 후 몇 군데씩 학원을 가야하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심지어 시계 볼 줄 모르는 어린 아이도 시계의 큰 바늘이 어디까지 가면 엄마가 데리러 오느냐고 묻고 또 묻는다고 한다. 요즘은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일몰이 되다보니 하루가 더 짧게 느껴진다. 활동할 수
“수능이후 거의 매일 오전수업만 하고 귀가해요.”,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은 급식먹지 않고 귀가해요.”, “이번 주부터는 학교장허가 현장체험학습을 일괄적으로 제출하도록 했어요.”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수능 이후 학사운영 지원 계획’을 발표하였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작년과 다름없는 형편이다. 교육부는 지난 8월 5일 수능 100여일을 앞두고 ‘수능 이후 학사운영 지원계획’을 발표하면서, 예비사회인인 고3 학생들에게 운전면허·컴퓨터 자격증 취득 등 맞춤형 프로그램 70여개 제공, 경찰청 등 9개 부처가 함께 나서는 ‘학생 안전 특별기간’ 운영, 시도교육청과 함께 학교의 자율적인 학사운영 모델 확산을 내세웠다. 교육부가 발표한 지원계획에 따르면, 학년별·학기별 이수단위 조정, 교과 및 창의적체험활동 연계 프로그램 운영, 여름방학 축소·겨울방학 확대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8월에 발표한 내용으로 학사일정을 운영하기에는 부담스런 부분이 상존한다. 3학년 2학기 이수단위 조정
십일월 파 /정끝별 매운맛 든 햇대파 한 단 달랑달랑 사 들고 와 베란다 빈 화분에 북 주듯 다시 심고 있는 팔순의 엄마 일파만파 쏟아질 듯 웅크린 등허리 - 정끝별 ‘은는이가’ / 문학동네 우리 곁에 늘 있는 것, 늘 품고 있는 것, 둥글어지는 소망 같은 것. 엄마의 품은 그런 것이다. “한 단”의 아름을 품고서도 “다시” 품기를 주저하지 않는 “등허리”를 지금 보고 있다. 선물처럼 남겨주었던 겨울과 그 계절 속에서 견뎌내는 대파의 “매운맛”에 대한 잔상들이 다시 살아난다. 당신 뒤에서 깊어지고 가까워지는 십일월이다. /권오영 시인…
‘중단없는 전진’이 유행하던 시대가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새벽종이 울렸고 사람들은 골목골목 빗자루를 들었다. ‘살기 좋은 내 마을’을 ‘우리 힘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또 영문도 모른채 해외로 나가기도 했다. 군인들은 베트남에서 미군과 함께 전쟁을 치렀고 광부와 간호사는 독일로 갔다. 달러(USD)를 벌기위해서.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 가운데 일부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흐지부지 상태다. 아무튼 우리는 1970~90년대를 일에 파묻혀 살았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을 이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잃은 것이 더 많았다. 가장들은 자녀들 얼굴조차 못보고 일했지만 어느 순간 가정에서 자신의 자리가 사라졌다. 대부분 일중독으로 ‘열심히만’ 살았다. 그것을 당연시했다. ‘이게 아니라’는 자각이 들기시작한 건 2000년대에 들어서다. 시대상은 광고 문구를 통해 드러났다. 2002년 현대카드 광고가 선두주자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열심히 일했으니 쉴 자격이 있다는 내용이다. 직장인 대부분은 반신반의했지만 그때 조금 알았다, 쉬어도 된다는 것을. 2012년 손학규 대통령선거 경선캠프에서 그 유명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문
경찰이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담당한 검사와 형사를 직권남용 체포·감금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독직폭행, 가혹행위 등의 혐의로 정식 입건했다. 아울러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을 담당했던 당시 형사계장과 경찰관도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8차사건 당시 수사라인에 있던 검찰과 경찰 관계자 8명이 형사 입건된 것이다. 이들은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공소시효가 소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 없이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청춘기의 20여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윤모씨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게 돼 다행이다. 윤씨는 1988년 당시 13세의 박모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검거됐다. 윤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경찰의 강압 수사로 인한 허위 자백이었다며 상소했다. 그러나 2심과 3심은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아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됐다. 그런데 윤씨의 억울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춘재에 의해 풀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춘재는 8차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자백했고 이 사건으로 옥고를 겪은 윤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식장에 갔다. 예식을 보고 식사도 맛있게 하고 나왔다. 신부와 신랑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은데 나올 때 꽃다발까지 안겨준다. 이 무슨 횡재인가 싶다. 요즘 일부 예식장에서는 예식에 쓰인 꽃을 포장까지 해서 하객들에게 나눠준다. 꽃다발을 받아들고 보니 축의금을 더 내고 싶어진다. 기분까지 활짝 핀다. ‘꽃을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것보다 ‘꽃을 싫어하세요?’라고 묻는 것이 더 쉽다. 다들 꽃을 좋아한다. 몇몇 예외를 뺀다면. 안 좋아하는 사람을 두 사람을 알고 있다. 어떤 플로리스트는 꽃다발 대신 돈으로 달라고 했다. 이해한다. 매일 만지는 것이 꽃이니까. 다른 한 명에게 꽃을 반기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배추라면 김치라도 담그지 꽃은 먹을 수도 없잖아” 먹어봤자 배도 안 부르다는 꽃. 그가 식물을 나누는 기준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꽃. 두 가지다. 아마도 그의 아내는 평생 장미꽃 한 다발 받아본 적이 없을 것이다. 장미를 좋아한다. 화려하기도 하거니와 여러 품종, 다양한 색을 가졌다. 제각각 다르면서 하나같이 예쁘다. 부드러운 꽃잎의 질감이 좋고 시선을 끄는 크기가 좋…
우리나라 음식배달 역사는 오래됐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적어도 250년은 족히 된듯하다. 1768년 실학자 황윤석이 펴낸 일기 ‘이재난고’에 “과거 시험을 본 다음 날 평양 냉면을 시켜 먹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1925년 발간된 ‘해동죽지’를 보면 배달 음식 종류도 다양했다. 그중 인기 음식은 ‘효종갱(曉鐘羹)’이었다. 새벽종이 울릴 때 먹던 국이라는 의미다. 요즘으로 치면 ‘해장국’인 셈이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통행금지가 해제되던 새벽 4시 경 배달해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해장국 맛집이 많았던 경기도 광주에서 시켜 먹었다고 하니 유별난 우리의 배달문화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통신수단이 전무 했던 시절이라 배달발품은 당연 노비들의 몫이었을 테고. 이렇게 시작된 토종 배달은 세월을 거치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국민 중 배달음식 한번 안 시켜먹은 사람이 없고 이제는 배달 없는 음식은 상상을 못할 정도가 됐다. 시간도 상관없다. 전화 한 통 또는 클릭 한 번이면 갓 조리한 음식이 집 앞까지 온다. 그야말로 ‘배달의 왕국’이다. 덕분에 배달업계도 성장을 거듭, 기업화 하면서 새로운 배달문화가 생겼다. 음식점에 속해 있던 배달 시스템이
페루의 수도 리마에는 ‘수치의 장벽’이 있다. 장벽의 길이가 10㎞가 넘는데 3m가 넘는 담 위에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양쪽은 서로 오갈 수 없는 다른 나라처럼 여겨진다. 같은 도시 안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한쪽은 판자촌이고 다른 한 쪽은 아주 고급 부촌이다. 한쪽은 몇 십억 넘는 넓은 수영장이 딸린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고 한쪽은 금방 쓰러질 듯한 남루한 판자촌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빈민가 사람들에 의해 오염되거나 절도와 약탈 등을 걱정하여 벽을 세운 것일 것이다. 이 경제적인 차이의 편가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며 오늘날에도 되풀이 되고 있는 패악(悖惡) 중의 하나 일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열차’와 ‘일등열차’를 보면 이점은 더 확실해진다. ‘삼등열차’는 철저하게 소외된 군상들로 침울하고 의욕을 상실한 침울함만이 지배하고 있음에 반해 ‘일등열차’ 우아함과 여유가 넘쳐흐른다. 경제적인 편가름에 비해 사상에 의한 편가름은 훨씬 무섭고 강렬하게 나타난다. 십자군 전쟁도 대표적이지만 전쟁을 비롯 학살, 감금 등이 난무한다. 좌우의 대립은 한국 사회를 가로지른 가장 끔찍한 형태로 제주 4·3, 한국전쟁, 광주민주항쟁을 거치며 현재까
10여 년 전 러시아 체홉 페스티벌 극장에서 제작한 셰익스피어의 <십이야>가 LG아트홀에서 상연된 적이 있었다.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상연되는 동안 몇 번이나 폭소를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작품을 보고 난 이후 종종 이 작품을 되새기곤 했는데, 그건 이 작품이 선사했던 후련한 느낌 때문이었다. 몇 쌍의 커플들이 엇갈림을 반복하다 이내 제 짝을 찾아가는 과정이 전형적인 해피엔딩의 스토리이다. 그런데 러시아 체홉 페스티벌이 제작한 <십이야>에서는 러브 스토리에 필수적인 여배우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출연한 모든 배우가 남성 배우들이었다. 일부 배우들이 여성 분장을 한 후 여성의 역할을 소화했던 것이었다. 동성 간에 이루어지는 사랑 연기가 그 자체로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여성으로 분장한 남자 배우들이 사랑에 빠진 각양각색의 여성들을 얼마나 그럴싸하게 표현했는지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동성 배우들끼리의 사랑 연기에는 긴장감이 없어서 바라보기가 편안했다. 그때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켜면 등장하는 허다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에 필자가 피로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