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출발한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 명제로부터 21세기의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는 욕망충족의 소비형 인간 명제에 이르기까지 이 사이에는 수많은 인간 명제가 존재할 수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명제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까뮈의 명제와 ‘나는 반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브레히트의 명제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다움의 정체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삼 년 전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얘기만 들었을 때는 헛웃음으로 넘겼지만, 영혼을 끌어서라도 아파트와 주식에 매몰하는 ‘영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왠지 모르게 명치 끝이 심하게 저렸다. 그런데 부동산 관련 뉴스가 남한 사람들의 모든 대화를 잠식하는 오늘에 이르러서 나는 맨붕이 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욕망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남보다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적인 행위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정신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가는 쾨테가 파우스트에서 예언한 ‘영혼팔이’ 곧 인간성의 타락 내지는 파멸을 보면서는 자포자기하지 않을 수 없다. 뭐 그렇게 내가 뛰어난 사
“광주는 늘 물 때문에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광주시 남종면 수청1리는 광주에서도 가장 외진 곳입니다. 팔당호가 바로 앞에 있는 곳이지만 상수도보호구역으로 개발이 제한돼 정작 수돗물을 쓰지 못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3년 전 취임사에서 했던 이야기이다. 우리 광주시는 전체 면적의 85%가 각종 공적규제(수도권·팔당유역·개발제한구역·군사시설보호구역)로 반세기 동안 희생만 강요되어 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중첩규제로 인해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께서 경기도 북·동부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3차 이전을 결정했다. 경기도의 공공기관 이전 정책은 그동안 군사시설보호구역, 상수원보호구역 등의 중첩 규제를 받아온 경기 동·북부지역에 대해서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라는 가치를 강조해온 경기도의 균형발전 정책의 일환이다. 이재명 도지사는 주요 공공기관 7곳을 경기 북·동부지역으로 이전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사람이든 지역이든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희생을 치른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특별한 보상이 있어야 공정한 것”이라며 시대의 중요한 화두는 공정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번 3차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도내 지역
오늘(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해상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하자 1970년 4월 22일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환경오염, 기름 유출, 살충제 사용, 산림파괴와 같은 문제들을 방치해 지구의 가열화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UN에서 정한 ‘세계 환경의 날’과는 달리 순수 민간운동으로 시작됐다. UN은 이로부터 2년 후인 1972년에 114개국의 정부 대표가 모여 개최한 국제연합 환경회의에서 6월 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정했다. 지구의 날이 제정된 지도 50년이 넘었다. 2015년 12월엔 약 190개국 정상이 파리에 모여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대처하자며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참가국들은 ‘2050 탄소 중립’ ‘탄소 배출 없는 나라’ 등을 선포했다. 그런데도 온실가스는 감소하지 않고 지구 온난화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안타깝게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나라는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큰 미국과 유럽연합이라고 하지만 남 탓만을 할 때는 아니다. 전국의 환경과 기후변화 시민단체가 모인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
사물을 대하는 데는 사랑이 없어도 괜찮다. 즉 사랑없이 나무를 베고 벽돌을 만들고 쇠붙이를 쳐도 괜찮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데는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 그것은 함부로 벌을 다뤄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벌의 성질로 보아 만약 이를 함부로 다룬다면 벌도 다치고 인간도 다친다. 인간은 일할 생각이 있으면 일할 수 있지만, 사랑의 실천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가만히 앉아 자신을 돌아보는게 좋다. 배가 고플 때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유익한 것처럼, 사람을 대하는 데는 오직 사랑이 뒤따라야 유익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 한번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하기 시작하면 결국 사람들에 대한 잔인함과 냉혹함의 한계가 사라지고, 너 자신의 고통에도 한계가 사라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계율인 ’원수를 사랑하라‘가 실제로 지켜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나는 절대로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기독교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 (레싱)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 즉 온갖 종류의 폭력과 강제, 형벌, 심지어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이 일어났다. 유튜버가 직캠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 게재했고 이것이 군생활의 추억을 소환해 단숨에 브레이브걸스를음원차트 1위에 올렸다. 이후 jtbc 아는형님, SBS 런닝맨 등 방송무대의 핫한 출연자가 되었다. 디지털 공간에서 소비자가 만들어낸 사회현상이다.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상위에 올라야 음원 차트를 장악하던 과거와 확실히 다른 현상이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지상파TV 못지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지상파 방송이나 신문을 레거시 미디어라 부르는 학자들이 많다. 레거시란 유산,잔재 등 낡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레거시 미디어란 과거의 매체이자 유산이란 말이다. TV와 신문이 헐값에 폄하되고 있다. TV와 신문을 자주보는 나도 레거시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철지난 꼰대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까치는 항상 정겹다. 어린시절 설날 노래에 등장하는 까치는 세뱃돈을 물어다 주었기 때문이다. 까치가 포악하고 매우 전투적인 조류란 생각이 안든다. 비둘기는 평화와 온건함이고 매는 강경하고 전쟁도 불사한다. 매와 비슷한 독수리는 용맹의 상징일 뿐인데 언어의 상징이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로 구체화되고 소통된다. 반대로 이렇게 사용하는 언어는 인간사고의…
· 1. 춘래불사춘 지난 주말, 모처럼 바깥나들이 했다. 쥐똥나무꽃이 예쁘게 피어 발갛게 져버린 벚꽃의 아쉬움을 덜어주었고, 연둣빛 신록이 어지간한 꽃무리보다 나았다. 하지만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더러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고, 기온마저 뚝 떨어져서 제법 추웠다. 옷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해야 했다. 동행이 죄다 춘래불사춘이라 한탄하니, 왕소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용히 힘을 기르자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가 시진핑의 주동작위, 일대일로로 바뀌면서 힘을 뽐내고 있다만, 고래로 중국 한족은 외래 민족과 전쟁만 하면 졌다. 오죽하면 북쪽 사람에게 졌다(敗北)는 말이 관용어로 굳어졌을까. 한나라 원제 시절, 강성한 흉노족과 화친을 맺고자 후궁 중 한 명을 골라 시집을 보내는데, 이때 뽑힌 사람이 왕소군이다. 북방으로 끌려가야 하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비파를 연주했는데,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미모에 홀려 날갯짓하는 것을 잃어버려 그만 땅에 떨어졌다는 경국지색이다. 후일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그녀를 기려 지은 시에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나온다. 나라를 지킬 변변한 장수 한 명이 없어, 가녀린 여인을 공물 삼아 화친을 맺어야 하는 한나라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하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3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채 온갖 시비에 휘말려 있다.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 캐치프레이즈의 핵심 성과다. 수십 년간 국가체제 개혁의 최고 어젠다였던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 제고’라는 막대한 사명을 띤 공수처가 출범부터 삐걱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완전히 갇히게 되면 정권 말기에 치명타로 작동될 수도 있음을 간과치 말아야 한다. 중립성과 도덕성·수사력에 대한 ‘국민 신뢰’를 하루빨리 확보하여 정상 가동돼야 할 것이다. 공수처는 지난 16일 부장검사 2명을 포함한 검사 13명을 임명했다. 정원 23명 가운데 절반가량만 가까스로 채운 셈이지만 어쨌든 수사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 나오는 13명의 사람이 세상을 바꿨다”며 자신감을 내비쳤으나 항간의 우려를 불식하기에는 역부족인 형국이다. 김 처장이 피의자 신분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면담 조사하기 위해 관용차 편의를 제공한 게 들통나 ‘황제 조사’ 논란을 촉발한 것은 참으로 난감한 실수다. 아무리 야권과 기득권 집단의 티 뜯기 상어 놀음의 결과물이라고
동물적 생활을 보내는 사람에게 육체적 욕망의 만족이 행복인 것처럼, 자신의 영성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 부정은 바로 행복이다. 남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은 선인이다. 만약 그가 선을 행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는다면 그는 더욱 더 선인이다. 나아가서 그가 선을 행한 상대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면 그는 최고의 선에 도달한 것이며, 그 선을 더욱 강화할 수 잇는 것은 오직 그가 그것을 계속함으로써 받는 고뇌의 증대뿐이다. 또 만약 그가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최고의 완성에 도달한 것이 된다. (라 브뤼에르)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예수) 아집은 영혼의 감옥이다. 감옥이 우리의 육체의 자유를 빼앗는 것처럼 아집은 반드시 우리의 행복을 빼앗는다. (류시 말로리)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비로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얼핏 이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