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방송을 중심으로 불붙은 ‘트로트’ 신드롬이 실로 대단한 광풍이군요. TV조선이 시작한 트로트 경연 열풍에 거의 모든 방송사가 영향을 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발라드·재즈·록 등은 물론 아이돌 출신들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앞다투어 몰려드는 풍경이 일상이 됐네요. 배우들이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일도 귀한 일이 아닙니다. 트로트 경연에 나온 유명 발라드 가수가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짠하게 만들더군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장르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어쨌든 도전하는 모습은 참 대단합니다. 평생을 걸고 해온 음악을 버리고 트로트에 뛰어드는 행태에 대한 일부의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은 장르마다 특징이 있고, 독특한 매력도 따로 있긴 하지요. 그 가치를 지키는 일도 소중하지만, 다양한 도전을 끝내 비난할 이유가 따로 있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논란은 또 있어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정서를 담은 성인가요들을 부르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시각입니다.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어요. 그러나 이미 열린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트로트를 금지곡으로 막아놓고 동요만 부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지 않을까 싶네요. 사랑의 기쁨, 이별
우리는 1년여 간 코로나 판데믹을 겪으면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있다. 4차 유행을 우려하고 있지만, 백신 접종의 확대 추세를 감안하면 머지않아 코로나는 종식될 것이다. 코로나가 준 교훈 중의 하나는 코로나와 같은 돌출적 위기(surprise)가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 파장 또한 기존의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것은 현재의 코로나 국면 수습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국제정세를 미리 상상해보고 대비하는 일이다.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는 시간적 한계가 5년이라는 통설이 있고, 전문가의 예측조차 틀리는 경우기 비일비재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길이라도 예측하는 노력은 개인의 삶이나 국가의 미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열어줄 것이다. 적어도 ‘예고된 위기’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 예고된 위기이자 기회는 ▲코로나보다 더 지독한 감염병의 출현, ▲혁명의 씨앗 배태, ▲세계화의 급속한 변화, ▲국가행동주의 시대의 도래, ▲소규모 모임으로 갈라지는 세계, ▲지킬하이드 세상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먼저, 기후변화로 인해 코로나보다 감염력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이란 전망은 상식이 되었
‘월드뮤직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강의해왔지만 내 강의의 대부분은 음악과 음악인 이야기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역사 강의로 샐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쿠바의 관타나메라’ 를 소개할 때다. 중,노년층의 관심이 늘 뜨겁다. 그들은 70년대 3인조 그룹 세샘 트리오(‘나성에 가면’을 히트 시킨)의 목소리로, 청춘시절에는 미국 조앤 바이즈, 호세 펠리치아노의 노래로 만났던 관타나메라를 추억 속에서 호출한다. 흑백 사진첩 넘기듯 아련한 눈빛이 된다. 노래 속 여인의 고향, 황백색 꽃 피는 종려나무 무성한 지구 반대편 섬 관타나모의 풍광을 전하면 ‘죽기 전에 언제 한 번 가보나’ 하는 동경의 눈들로 빛난다. 그러다 노랫말의 주인공, 쿠바 혁명가 호세 마르티 이야기를 하면 노래 이미지 반전에 충격 받는다.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와 미군 주둔 관타나모 기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알카에다 포로 수용소, 혹독한 고문 등의 뉴스를 떠올린다. 지금은 수교국이지만 60여년간 적국이었던 미국 포로수용소가 왜 쿠바 땅 관타나모에 있는지부터 질문이 쏟아진다. 관타나모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500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곳
세계 질서와 안보가 미·중 패권 구도로 긴박하게 빠져들고 있다. 지난주 미국에서 만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강력한 대중국 공조를 천명하면서 미중 사이의 대치 전선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미·일은 특히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중국에게 가장 예민한 대만 문제를 50여년만에 두 정상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일본으로서는 1972년 중국과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한국처럼 대중국 교역 비중이 큰 일본이지만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을 향해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도쿄올림픽에 대한 지지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방위를 재확인하는 반대 급부를 얻어냈다. 이를 놓고 일본 내부에서 우려와 함께 여러 시각들이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이웃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미·일정상회담을 계기로 동북아와 동중국해 등 역내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와 함께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두 나라는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동맹 및 지역의 안전보장을…
지난 2018년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우리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 15만명 앞에서 행한 그 연설을 지켜보면서, 이제 남북의 실질적 평화시대, 나아가 남북연합의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조였던 기억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분단 70여년의 역사가운데 그 날처럼 한반도 평화의 꿈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실감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북한이 문재인정권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해 김정은위원장 신년사와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 이 후 특사파견에 따른 북미정상 만남의 주선과 4·27 판문점 남북정상의 만남에 이은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실현, 결과물인 합의문에서 북이 그간 그렇게도 바라왔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이라는 성과를 얻게 되면서 우리 문재인정부의 중재능력과 대미 영향력에 대하여 새로운 평가를 내린 결과가 평양 5.1경기장에서의 문대통령 연설이었다고 필자는 굳게 믿는다. 1년 남은 이 정부가 ‘꽃피는 봄날’을 다시 보고 싶다면 현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과 대안책을 강구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지난 달 북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와 이후 최선희 외무성제1부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굉장히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모른다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다. 아무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고 잘못된 일이다. 지식인들의 논리 정연해 보이는 말들은, 때때로 어떻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애매한 의미를 언어에 부여함으로써,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회피하려고 한다. 이유는 ’모른다‘고 하는 매우 솔직담백한 말이 학문의 세계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 인간의 무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태어나면서부터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무지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현자만이 도달하는 깨달음의 무지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것저것 거죽만 핥은 얄팍한 지식을 갖고 대단한 학자인 양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데 바닥 민중은 그들의 허황됨을 알고 경멸한다. 그러면 그들은 민중을 무지몽매한 무리라고 경멸한다. (파스칼) 가장 나쁜 것은 깊이 고찰된 사상에만 어울리는 특별한 언어를 사용해, 함부로 자신의 사상을 얘기하려는 사람들이다. 만일 그들이 쉬운…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1936~2011) 대통령이 유명했던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청바지를 입고 뒷 주머니에 시집을 꽂은 채 주말이면 공연을 보러 갔다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건 상당 부분 하벨이 대통령이 된 후에 윤색된 얘기이거나 그의 전기 영화에 쓸 요량으로 첨삭된 각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벨처럼 시인이나 극작가는 정치를 해서 비교적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는 있어도 그 역(逆)은 그리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정치라는 영역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끌어 들일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는 얘기다. 수많은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한 것은 인문학과 예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그랬다. 예술이 사라진 사회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인민에 봉사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한들 선전(宣傳), 선동(煽動)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벨이 체코의 벨벳혁명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늘 미완의 혁명이며 때문에 영구적으로 혁명을 수행해 나가야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택배물량이 급증했다.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전체 18개 택배 사업자의 지난해 택배 물량은 총 33억7818만9000 개였다. 이는 2019년보다 21% 증가한 것이다. 택배 물량은 2016년 20억 개를 돌파했다. 그 후 매년 10% 정도씩 증가했지만 코로나19가 세상을 지배한 지난해에는 평년 증가율보다 2배가 넘는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곳은 택배 회사들이다. 택배 노동자 역시 수입은 늘어났다고 하지만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물량을 처리하다가 급기야 과로사로 숨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심야·새벽배송을 끝낸 택배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부검결과 과로사 증상인 뇌출혈이 발생했고 심장 혈관이 많이 부어오른 상태였다고 한다. 같은 달 24일에도 한 택배노동자가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8년차인 택배기사인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 주 6일을 근무했고 하루 평균 200개에서 250개, 한달 평균 5500~6000개를 배송했다고 한다. 전국택배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택배 노동자 15명, 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