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 변호인으로 참여해 보면 때때로 한 없이 초라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되고는 한다. 모든 증거는 검찰이 가지고 있고 검사는 유죄입증에 유리한 증거만 제출한다. 수사를 통해 무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했다고 해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그러한 증거가 검사에게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천신만고 끝에 증거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해도 이를 검사로부터 얻어내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지난 2010년 용산 사건에서 검찰은 재판부의 공개결정에도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버텼다. 결국 검찰 손에 있는 증거는 검찰이 제출하기 전에는 변호인 심지어 판사마저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형사법정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무죄 입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변호인이 되고는 한다. 압도적인 수사력을 통해 수집한 증거 중 유죄의 입증에 유리한 증거만 제출하고는 하는 검찰을 상대로 무죄를 받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이라 말하고 싶지만 “가깝다”는 수식어를 붙이 이유는 2019년 기준 무죄선고 비율이 0.82%이기 때문이다. 형사법정에 들어간 피고인 100명 중 고작 한 명 정도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고 최고의 생일 선물입니다.” 지난8일 영국에서 코로나에 대한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세계 최초로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백신을 접종한 90세 할머니 마가렛 키넌이 밝힌 소감이다. 2020년 한해 지구촌을 지배해온 코로나에 대한 인류의 응전이 본격 가동됐다. 그러나 백신 효능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만큼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럽에선 15C 이후 육해상 연결 요충지인 이스탄불을 근거지로 오스만제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이어 스페인과 포루투갈, 네덜란드가 항해술(나침반 등)을 무기로 해상 무역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패권은 영국으로 넘어갔다. 1588년 스페인은 영국을 침략하는데 함대의 절반이 전복됐다. 영국을 상대하려면 북해를 항행해야 한다. 그런데 혹한에다 세계에서 가장 사나운 바다로 유명한 북해를 스페인 해군이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임진왜란때 명량해전에서 일본이 133척의 전선을 갖고도 물살의 변화가 심한 울돌목에서 12척의 이순신 수군에 대패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이 막강한 해군력으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하게 된 힘의 원천은 이처럼 열악한 해상 환경에 맞서는
블랙머니와 검사의 두 얼굴 “블랙머니”. 검은 돈, 뇌물이나 부정한 거래에 은밀하게 오가는 돈이라는 뜻인데, 은행매각 비리, 금융 범죄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의 소재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은행을 헐값에 매입하고, 매각한 사건을 파헤치는 검사 이야기. 영화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한 수사 검사가 수사 중지라는 윗선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증거자료를 폭로한다. 그런데 부장검사와 사건 배후에 있는 핵심 인물인 전직 총리가 사건 실체의 은폐를 은밀히 합의하는 데, 더 눈길을 끈 것은 검사 사무실 벽면에 걸린 액자였다. 이 액자에는 “공명정대(公明正大)”라는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공명정대한 길을 걸어 왔는가 현실은 영화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내외부적 압력에 따른 사건 무마 등 사회적 사건을 그저 영화 속의 픽션으로만 볼 수 없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중심에서 검찰이 처한 현실이다. 그간 검찰이 가진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해 왔는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건들만 해도 수도 없다. 정치적 과잉 수사를 한다든지, 기소할 혐의자를 불기소 처분한다든지, 제대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지
검찰개혁은 국민주권의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검·경수사권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의 검찰개혁이 방향을 잃었다. 벼랑 끝에 몰린 검찰개혁을 갈망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 주] '추윤 갈등'은 기성 언론과 국민의힘당 등이 만들어낸 잘못된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항명'이라고 써야 쓰임새가 정확하다. '검사들 집단행동'은 좀 나은 편이지만 이것도 앞에 수식어 하나를 붙여야 맞다. '검사들의 불법적 집단행동'이라고. 촛불 정부 들어 수구 세력들(그들이 어찌 보수란 말인가? '보수'도 잘못 사용되고 있는 말 중 하나다.)의 우리말 비틀기가 일상이 되었다. 그들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말들에 박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정반대로 읽어야 어떤 진실에 다다른다. 심지어는 문장 비틀기도 다반사여서 약간의 논리적 사고를 요한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윤총장의 항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어가고 있을 무렵 기성 언론에 보도된 문장 하나. "대통령이 나서서 추윤 갈등을 빨리 해결하고 민생에 나서라." 이 문장은 그럴듯하다. 민생 앞에서 그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국민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절실한 것이 어디에 있
민주당이 지난 8일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등 핵심 쟁점 개정법안을 상임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다수의석의 여당은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 야당은 몸으로 막아서는, 국회 창설 이후 줄기차게 보아왔던 장면들이 또다시 연출됐다. 집권당이 나라를 위해서 진정 절박해서 그런 것이라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야당과 언론이 쏟아낸 우려가 기우(杞憂)라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오롯이 여당에 주어졌다. 기업규제 3법의 경우도 논란이지만, 역시 가장 첨예한 법안은 공수처법 개정안이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사회를 맑게 하여 ‘유권무죄(有權無罪)’의 치명적 모순사회를 끊어낼 소중한 국가기구다. 공수처의 출범은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적 완성이고, 20년간 기울여온 무수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감회가 새로운 일이다. 큰 물고기들은 다 빠져나가고 잔챙이들만 잡아내는 이상한 사법 그물의 결정적 부조리를 해결할 소중한 장치가 돼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천신만고 끝에 공수처법을 관철해냈다. 그러나 공수처 출범은 공수처법을 처음부터 반대해온 국민의힘의 끈질긴 발목잡기로 무한정 미뤄져 왔다. 찬반 의사와 상관없이 일단 제정된
보길도는 기억의 창고다. 첫 장편소설을 집필했고, 어머님과 별리, 여인과 별리, 백구 토순이와 별리, 필자에게는 이별의 공간이었다. 큰형님의 공직생활을 기점으로 보길도와 맺은 인연은, 수원서 열차로 광주에 와 시외버스로 환승하여 땅끝 마을 항에 도착하면, 30분 간격으로 항해하는 철선을 타고 노화도 산양진항에서 정박한다. 승용차로 15분간 달리면 국문학사에 길이 남는 가사문학의 최고봉인 조선시대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지었던 곳, 보길도다. 세연정과 동천석실, 곡수당과 낙서재, 부용동 원림을 둘러보고, 예송리 해변 자갈을 밟고 건너편 예작도를 바라보면 조석으로, 지는 해의 찬미와 함께 황홀한 일출광경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여름철이면 예송리, 중리, 통리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북바위와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씐바위, 보죽산, 복생도를 둘러볼 수 있다. 백동백과 흑동백, 동박새와 팔색조가 서식해 자연을 접한다. 참전복과 멸치와 액젓은 인기다. 곳곳에 황칠밭이 보이고 정자리에는 천연기념물 479호 황칠나무가 자라고 있다. 장편소설『유리상자 속의 외출』을 집필하는 동안 수원과 보길도를 왕래하며 상념을 담아냈어야 했다. 말없이 피고 지는 자연의 섭
재일동포 한영용씨가 개발한 ‘뿅뿅사’ 모리오카 냉면은 부산 밀면가 가장 유사하다. 그 냉면 하나 가지고, 한적한 지방인 모리오카(盛岡)역 주변을 비롯해 시내 여러 곳에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리오카하면 '냉면'이라는 이미지를 떠오른다는 일본인들도 상당히 많다. 그가 이렇게 냉면을 개발, 보급하게 된 것도 유년 시절 맛본 냉면의 기억 때문에 비롯되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일본인 故 가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사장은 어린 시절 부산 초량시장에서 먹었던 매운 '명란젓' 맛을 잊지 못해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식품으로 만들어 일본 최대 명란 식품 회사 '후쿠야'(ふくや)을 만들었다. 이 명란젓 이야기는 연극, 소설, TV 드라마를 통해 알려졌다. 그는 부산 초량시장 유년 시절의 맛을 평생 잊지 못했다. 일본인들도 명란젓이 한국 그것도 부산에서 전래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화 콘텐츠에 있어서 글로컬’(global+local), 다시 말해서 ‘지역성’, ‘현지화’의 조율을 통해 음식을 통해 지역의 ‘문화 코드’로 만들어낸 것이다. 오랜 기억, 집안 행사가 있어 아버지와 고향 큰집을 갈 때면 용산역에서 김천역까지 갔다가 꼭
방송에서 자전거 경주와 자동차 경기를 연이어 시청했다. 먼저 자전거로 50km를 수시간 달리는 경주였다. 유럽의 어느나라 전원마을의 2차선 좁은 도로를 모두 비우고 지역주민들의 응원속에 경주를 펼친다. 시속 30~50km로 달리다보니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장거리를 달리는 선수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대략 100명이 넘어보이는 선수중에서 우리 선수를 찾아서 물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 그리고 틈새로 들어가 촬영을 하고 심판을 보는 승용차와 오토바이의 활약상도 멋지다. 장거리 코스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대회 주최측의 사전준비에도 큰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동차 경주는 정해진 트랙을 달리는 것이어서 사전 준비는 자전거 경주만큼 어려움은 아니겠지만 큰 비용을 들여서 경기장을 건설했다. 우리나라에도 영암에 자동차경주장이 있는데 투자비용에 비해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언론의 지적이 있었다. 자동차 경주는 달리는 차와 선수를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홈으로 들어와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자신의 팀이 대기한 코스로 들어오면 하나둘셋 신호에 따라 양쪽으로 달려가서 한방에 바퀴를 빼내고 통으로 교체한다. 그 작업시간이 가히 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