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수업으로 한 학기가 끝났다. 대학원 수업이나 실험 실습이나 예술 체육 교과목은 대면수업을 하기도 했지만 수강생이 30명 이상인 대부분의 많은 학부 강의들은 온라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종전에는 휴강으로 한두 번 온라인 강의를 해본적은 있었지만 한 학기전체를 다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이 들었다. 시간이 곱절 이상 들었다. 강의안을 PPT로 준비하고 낯선 컴퓨터 장비들 혼자서 앞에서 떠든다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심지어 한 시간 반 정도 열심히 얘기를 해서 강의를 마치고 탑재하려고 하는 순간 다 날아가 버려 허둥지둥 하던 때도 있었다. 모두 일시에 온라인으로 집결되니 끊김 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데이터 트래픽이 최소한 수십%에서 100%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5G의 최강국인 우리나라는 이미 1년 전부터 인프라를 구축해오던 중이여서 그나마 더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각 대학은 이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여했고 우리대학교도 기민하게 움직여 별다른 큰 사고 없이 한 학기를 마치게 되었다. 벌써 2학기까지도 온라인으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번 강의를 통해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된 것은 모든 일은 시작
1990년말까지 공무원들은 발령을 받으면 청사내 모든 사무실로 인사를 다녔다. 요즘에는 결재판 모양의 멋진 발령장을 받지만 당시에는 달랑 종이 한 장 위에 임용사항을 적고 직인을 찍어주었다. 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청내의 모든 사무실을 돌았다. 문서실, 발간실, 자료실, 구내식당까지 찾아다니며 발령인사를 했다. 발령장은 자신이 보이는 방향으로 들고가서 180도 돌려 상대방이 보는 방향으로 보였다. 인사를 받는 간부들은 반드시 발령장을 받아들고 내용을 살펴본 후에 다시 받는 이의 시선에 맞게 되돌려 주었다. 1935년 전후에 태어나시고 1960년대에 공무원을 시작해서 1995년 전후에 퇴직하시고 이제는 85세 전후이신 어르신들은 발령 인사를 가면 반드시 발령장을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아들고 내용을 읽고,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 바닥으로 발령장 위를 두바퀴 정도 쓰다듬었다. 나중에 선배들께 이 정황을 물으니 발령장을 주신 기관장의 기(氣)를 받으시는 의식이라 했다. 자신의 다음번 영진(榮進), 영전(榮轉)을 희원하는 것이었다. 영진은 승진이요, 영전은 좋은 자리, 원하는 부서로 이동한 것이다. 그래서 축전에서는 공통분모인 ‘축 영전’이라 보낸다. 오전 9시에 발령을
지난 6월에 보여준 북한의 위기 고조 행태와 돌연한 중단 등 변칙적 행동과 코로나 사태 장기화는 정보예측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정보를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단호히 강조한다. “정보는 예측”이라고. 복잡성과 불확실성으로 상징되는 현대사회는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것을 예측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 훈련과 정확도를 높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개인적으론 파산을, 국가적으론 국가위기 상황까지 불러 오게 된다. 대영제국 시절 웰링턴 공작은 “전쟁이나 인생이란 비즈니스는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예측하는 일”이라고 설파했다. 김정은 정권이 지난달에 벌였던 ‘한반도 위기고조 쇼’에 대해, 국가정보기관은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고 판단했는지 냉철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일각의 지적처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실에 대한 징후가 있었음에도 이를 경시하고 문 대통령이 ‘6·15 유화연설’을 강행했다면 심히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보를 정치권력자의 입맛에만 맞추는 행위, 이른바 ‘정보의 정치화’ 행태는 정보기관의 예측 능력을 무력화시킬 뿐 아니라 안보적 판단에 심대한 장애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핵능력 고도화를 분명히 한…
경기도의회 이창균 의원(더불어민주당·남양주5)이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 밝힌 입장에 공감하는 도민들이 많을 것이다. 이 의원은 13일 5분 자유발언을 통해 ‘훼손지 정비사업’이 실효성이 전혀 없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훼손지 정비사업은 그린벨트에서 동·식물 관련시설로 허가를 얻은 후 창고 등 다른 용도로 사용 중인 토지를 일정한 조건을 충족할 경우 물류창고로 용도변경을 해 주는 사업이다. 이행 강제금 부과를 유예하는 대신 훼손된 토지 중 최소 30% 이상을 공원과 녹지로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 채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유효하다. 하지만 자체부지로 기부채납하는 방식은 토지소유주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추진절차와 환경여건에 전혀 맞지 않는 규정 등으로 도내에서 훼손지 정비사업 신청을 한 토지소유주는 단 한명도 없다고 한다. 법을 만든 국토부나 준비를 하지 않은 지방정부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는 시대적 환경여건에 맞게 재설정 돼야한다. 이의원의 주장처럼 개발제한구역 내 주민들은 대부분 열악한 소규모 토지주들이다. 이들은 오랜 기간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당해 왔다. 이 의원은 “현재 경기도 내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30원(1.5%) 오른 시급 기준 8천720원으로 의결했다.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 1.5%는 최저임금 제도를 처음 시행한 198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결정된 인상률에 대해서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 모두가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일률 적용하는 방식의 최저임금제도 자체가 모순투성이이고, 결정 구조 또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의 최저임금제도는 업종이나 기업의 규모, 지역에 구분 없이 일괄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말하자면 체급이 다르고 종목이 다른 모든 선수를 한꺼번에 운동장에 집어넣고 경기를 시키는 불공정한 게임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일본·프랑스·영국 등 외국의 경우, 이런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최저임금의 업종별·지역별 차등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은 지역경제 사정을 고려해 A·B·C·D등급으로 최저임금을 달리한다. 우리의 최저임금법 제4조(최저임금의 결정기준과 구분)는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 여당과 노동계는 ‘어느 지역과 업종은 저임금’이라는 낙인효과를 거부 이유로 들고 있지만, 외국 사례
“베사메 무초 몰라요? 백만송이 장미는요?” ‘월드 뮤직’을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몇 년 전, KBS 라디오 방송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월드뮤직’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1위부터 5위까지를 보면, 베사메 무초, 포르 우나 카베자, 엘 콘도르 파사, 백만송이 장미, 크레네스(백학). 동영상을 튼다면 모두 흑백일 듯한 오래된 노래들이다. 그렇다고 월드뮤직이 나이든 이들만의 음악은 아니다. 에일리가 베사메 무초를 부르고 국카스텐 하현우가 백만송이 장미를 불러 히트시킨 예처럼 젊은 가수들이 끊임없이 그 먼 나라들의 옛노래를 다시 불러 히트시킨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베사메 무초’는 멕시코 노래로 2차세계대전 당시, 전쟁터로 가기 위해 헤어지는 연인들 사이에서 퍼지며 인기를 얻었다. 영어로 번역하면 ‘Kiss me much’ 즉 ‘키스를 많이 해주세요’라는 뜻이니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이생에서 마지막일지 모를 연인들의 애타는 심사에 불을 붙였다. 가사를 살짝 들여다볼까. ‘나에게 키스해줘요. 아주 많이 키스해줘요/ 마치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인 것처럼/ 나에게 키스해 줘요 아주 많이 키스해줘요/ 이 잠이 지나고 나서/ 당신을 잃게…
‘인간은 두 종류밖에 없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의인(義人)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다.’ 철학자 파스칼의 말이다. 그는 ‘인간은 신과 악마 사이에서 부유(浮遊)한다’는 말도 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삶을 놓고 아는 만큼만 평가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서는 선악의 개념도 아적(我敵)의 가름에 종속된 지 오래다. 지독한 진영논리에 중독된 가치관들이 세상인심을 곧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남기고 간 숙제가 무겁고 또 무겁다. 13일 공개된 생전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충격적이다. 그 기간이 무려 4년 동안이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언어로, 문자로, 때로는 물리적으로 지속해온 추행의 양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이 나라 최고의 명성을 지닌 인권변호사요 시민운동가가 아니었다면,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이라고 불리는, 지도교수의 성추행 사건을 만천하에 드러낸 선각자가 아니었다면 충격이 좀 덜했을까. 일방적 주장이긴 하지만, 박 시장은 피해자를 수시로 집무실 또는 휴게실 침대로 불러 “셀카 찍자”, “안아달라”고 하며 신체 접촉을 꾀했고, 다리에 든 멍 자국을 보며 “호-해 주겠다”며
100세 백선엽 장군아 타계했다. 장군의 장남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울이나 대전이나 다 대한민국 땅이고 둘 다 현충원”이라며 “아버지가 지난해 건강했을 때 이미 대전에 안장되는 것으로 마음 먹었다”고 전했다. 백선엽 장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워커 중장은 1950년 8월 1일 ‘워커라인’이라는 낙동강방어선을 설치했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고 못 박았다. ‘Stand or Die!’ 비장한 명령을 내렸다. 낙동강전선을 죽음으로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인 것이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시 낙동강방어선에서 다부동을 사수하여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6·25전쟁 영웅이다. 백선엽 장군을 대전현충원에 모셨다. 다부동 참전용사 4명과 육군 장병 4명이 칠곡 다부동 등 백 장군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8곳에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고 한다. 의미있는 일이다. 백 장군은 생전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유지와 함께 다부동,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등 이른바 8대 격전지의 지도를 그려 전쟁기념관 관계자 등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모든 이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사명이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강제구 소령은 훈
화분 연대기 /안명옥 화분 하나 오래 놓였던 자리 자국이 남아 있다 새 화분을 들이고 한 구석으로 밀려났던 화분 내버려둔 시간 동안 저 홀로 견디며 큰 잎사귀에 가려져 그늘을 품고 산 화분 이제 때가 된 거야 음악처럼 중얼거리며 들어보니 화분이 가벼워졌다 힘들던 시간 네가 없었더라면 집은 사막과 같았을 거야 누군가를 기다리던 뒷모습을 닮은 한 존재가 그렇게 떠나갔다 꽃 피우던 시절을 기억하는 한 우린 늙지 않는 것 자꾸 베란다가 허전해 서성거린다 지는 잎들이 바닥에 흥건하다 ■ 안명옥 1964년 화성 출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시와시학’ 제1회 전국 신춘문예, 시집으로 ‘칼’과 ‘뜨거운 자작나무숲’ ‘콤한 호흡’ 출간. 서사시집 ‘소서노召西奴’, 장편 서사시집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창작동화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 ‘금방울전’, ‘파한집과 보한집’, 역사동화 ‘고려사’ 등이 있고 성균문학상, 바움문학상, 만해시인상, 김구용문학상 등 수상.
“그게, 솔직히 모르는 것도 많고 도움 요청드릴 일이 많다 보니 괜히 폐가 될 것 같아서요.” 얼마 전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조카가 필자에게 경험담을 얘기한다. 줄곧 회계업무만 보다가 단독으로 기획일이 맡겨지니 뭐가 뭔지 몰라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 끙끙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직장과 사회의 현장에서의 변화와 혁신은 실행력을 담보하지만, 실행력은 현장에서의 질문과 요청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즉,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면서 함께 알아가고 그것을 실행시켜가고, 그것이 곧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힘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동료들과 선배들에게 질문이나 요청하는 것을 여전히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큼은 스스로가 해내는 주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은 주도적이라는 의미를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를 하는 것일까.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과 어려움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기억하자. 진정 부끄러운 것은 알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