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맞이 대청소를 하기로 한 날. 거실 곳곳에 흩어진 책들을 집어 책꽂이에 꽂았다. 책상 위 필기도구도 제 자리에 꽂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몇날 며칠씩 잠식해 오던 거실 먼지들이 한 순간 휩쓸려 들어가고 제법 집안 꼴을 한 공간마다의 바닥이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현관 앞 지그재그로 널브러진 신발의 짝들을 찾고 묵은 계절의 신발을 정리하기로 했다. 한 계절 닫혀있었던 신발장 문을 열어젖히자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신발마다의 추억들. 가장 먼저 눈에 띈 미색 트레킹화. 스물다섯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올랐던 백두산. 고구려의 정기를 듬뿍 받아오겠다며 떠났던 그 일정에서 우리는 안중근 열사의 뜨거운 애국심과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니라는 안타까움으로 얼룩덜룩해진 자존심을 안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비 오는 와중에 올랐던 오녀산성의 질퍽거리던 진흙의 흔적이 그대로 신발에 남아 추억을 퍼내어주다니. 지난 시간은 그렇게 현재의 흔적에서 문득 문득 나타나기도 한다. 맨 아래 칸, 빨간 등산화가 눈에 들어왔다. ‘아, 태백산 눈꽃?’ 눈이 참 많았던 그 해 겨울, 속절없이 내리는 눈을 감당할 수 없어 달려간 곳이 태백산. 복잡한 생각 없이 오르기…
…
우리나라에는 30만 다문화가구가 살고 있다. 가족 구성원 수는 96만명에 이른다. 거기에 결혼했지만 귀화하지 않은 외국인, 유학생, 이주 노동자, 국내 체류 해외국적동포 등을 모두 합치면 205만 5천명의 외국인이 국내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행안부 2018 외국인주민현황) 5천100만 국민 중 4%가 외국인인 셈이다. 20년 뒤인 2040년 다문화 가정 비율이 20%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선진국과 다름없이 인종과 문화가 융합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단일민족·문화라는 말은 더 이상 우리의 전유물이 아닐 정도로 현실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순혈주의에 빠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외국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은 이주여성과 다문화자녀에 대한 가정폭력이나 또래 차별이 큰 나라로 소문 나 있다. 그중 학생들이 받는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다문화 학생 10만9천387명 중 1천278명이 편견과 따돌림, 폭력 등으로 학교를 그만뒀다는 교육부 보고서도 있다. 다문화 학생들의 비율은 점점 늘어 작년 기준 12만명에 달한다. 보
민박 /송재학 툇마루의 놋요강에 오줌발을 내린다 막 개칠을 시작하는 소나기는 미닫이부터 적신다 비안개의 아가미조차 숨겨왔던 새벽이다 추녀의 숫자만큼 뒹구는 빗방울 느린 시간의 뒤에 좀벌레처럼 머무는 빗방울 머위잎을 기어이 구부리는 빗망울 빨랫줄의 참새가 방금 몸살을 터는 중이다 자주달개비 혀에 보랏빛이 번지는 중이다 질펀해질 마당이 막 소란해지는 중이다 자세히 보니 모두 알몸이어라 -송재학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 / 문학과지성사·2019 송재학 시인의 시 ‘민박’에는 ‘나그네의 잠자리’라는 ‘민박’(民泊)의 통상적 의미와 함께 ‘애가 타도록 걱정스럽다’는 ‘민박’(憫迫)의 동음이의(同音異義)의 서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비오는 날 낯설은 민박집 지붕과 창가와 문틈으로 스며드는 빗소리와 함께 나그네 인생들의 젖은 삶의 무게들을 노래하는 듯하다. 빗방울은 ‘느린 시간 뒤에’ 머물러 머위잎마저 구부리고 질펀해질 마당을 소란케하는 나그네의 젖어드는 풍경의 주어(主語)다. 민박같은 생애 어느 멈춰…
입동이 지났다. 겨울 문턱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소식만 들려온다면 좋으련만 아픈 소식이 더 넘쳐난다. 겨울은 없는 서민들에게 손 시린 계절이다. 사회는 있는 이들보다 없는 이들이 더 많다. 그만큼 따뜻한 손길을 뻗어야 할 복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경제 10대국(大國)에 진입했다고 하나 아직도 주변에 어려운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살만하다고 압력에 굴복하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압박한지 92일만의 일이다. 자동차, 반도체 같은 산업은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대한민국 농업은 아직도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농업인들이 불끈했다. 당연한 일이다. 24년 간 유지해온 ‘개도국 지위’는 한국 농업의 보호막이었기 때문이다. 농업보조금이나 주요 농축산물 관세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향후 협상이 진행되면서 미국산 농축산물의 추가적인 수입 요구가 우려돼 이래저래 농업분야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농업인단체는 한국농정의 굴욕 외교사라면서 방침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소비자들인 국민 대다수에겐…
국가의 여러 지원제도 중에서 장애인과 관련한 조세지원 제도가 많다. 1. 소득세 연말정산 등을 통하여 많이 알고 있듯이 부양가족이 장애인인 경우 연령제한없이 소득요건만 충족하면 기본공제 1인당 150만원이 적용되며, 기본공제대상자가 장애인인 경우 기본공제 외에도 1인당 200만원이 추가로 공제된다. 장애인을 피보험자로 하는 장애인전용 보장성보험료를 추가로 불입한 경우에 불입액의 15%가 추가로 세액공제(불입액 연간 100만원 한도 있음)된다. 또한, 의료비 세액공제 적용시 장애인·중증질환자의 의료비 지출액은 한도를 적용하지 않고 총급여액의 3% 초과분 전액에 대하여 1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으며, 장애인의 재활교육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등에 지출한 비용은 금액 제한이 없이 전액 세액공제 대상 교육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2) 중소기업 취업 장애인 소득세 감면 장애인이 2014년1월1일부터` 2021년12월31일까지 취업하는 경우에도 취업일로부터 3년간 소득세의 70%가 감면된다. 2. 상속세 및 증여세 1) 상속세 계산시 장애인 공제 상속인 중 장애인이 있으면 추가로 인적공제를 받을 수 있다. 추가공제액은 장애인 1인당 1천만원에 기대여명의 연수를 곱하여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최근 “2025년부터 군 징집 인원이 부족해 징병제를 유지하고 싶어도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단계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해 군 가산점 역차별 논란이나 병역기피 논란 등 사회적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고 경제효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운을 띄웠다. 아직까지는 민주연구원의 정책브리핑에서 언급된 정도이고 민주당 지도부도 “정리가 안됐다”고 밝혔다. 검토수준이라는 것이지만 정치권에서의 갑론을박이 뜨겁다. 군 모병제가 이번에 처음 언급된 것은 아니다. 지난 17대 대선 국면에서도 대선주자들끼리의 찬반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모병제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안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라고도 하고 한편에서는 이를 적극 동의하면서 공론화 과정을 밟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지어는 야당인 자유한국당 윤상현의원(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숙련된 정예 강군을 만들기 위해 모병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자당 원내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윤 의원은 자신의 SNS에 모병제를 더 늦출 수 없다면서 “이 문제는 보수·진보를 넘어선 초당파적 이슈”라는 글을 올렸다. 총선을 앞두고 있어 경계와
“농사를 지으려면 햇빛에 얼굴이 타야지 얼굴 안타고 어떻게 농사를 짓겠어요?”,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에 젖어야지 안젖고 어떻게 (물)고기를 잡겠습니까?” 경기도청 11월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재명 도지사가 팀장급 이상 간부 공직자에게 당부한 내용이다. 이날 그는 “우리의 작은 선택과 아이디어 하나로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공직하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기존에 누렸던 공직이라는 권력을 내려놓고, 안락(安樂)도 버리고, ‘오직 도민’ 만을 보고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자는 간곡한 바람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해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한 경기도청 일부 공무원들이 있다’는 오해(?)를 사게 됐다. 이 지사가 지난 1월 천명한 소위 ‘이재명 표 오피스텔 깜깜이 관리비 개선책’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가 사달이 났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도시주택실 행정사무감사에서다. 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이필근 의원(민주당·수원4)의 ‘매의 눈’에 딱 걸렸다. 이 의원은 ‘깜깜이 개선책’이 현재 “관련 조례조차 마련하지 못했고 집합건물 관리지원단과 전문팀도 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늑장 행
고3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수능시험을 하루 앞두고 마음 바쁜 시기이다. 모든 교육이 대학입시로 모아져 있어 학부모들은 수능 100일 기도를 하는 등 자녀가 수능을 잘 보기를 기원한다. 심지어 수능 당일에는 출근시간 마저도 1시간 늦추거나, 영어읽기 시간에는 항공기마저 뜨지 않을 정도로 국가적인 시험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무결점 수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능시험을 위해 수고를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다. 경찰관, 소방관, 보건서 직원, 수능시험장 학교 교원들, 그리고 감독을 맡는 전국의 수많은 교사들이 수능시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교사들은 수능시험 때만 되면 스트레스로 인해 없던 병이 생겨날 정도로 감독하기를 꺼려한다. 시험장을 맡는 학교도 마찬가지이며, 수능을 맡는 업무담당자들도 각종 민원과 업무과중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근본적인 대학입시에 대한 개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수능시험에 대한 본질을 살리고, 고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면서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장기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각자 자신에게 맡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맞지 않을 경우 과를 바꾼다든가, 다른 대학에 들어가 원하는 진로를 찾아 공
“어디로 갔지 또?” “뭘 찾아요?” “저거…저거…내 말이 생각이 안 나네. 돈 넣는 거요. 요만한 거 있잖아요” “지갑이요?” “맞아 지갑이요. 아이고 또 지갑이 어디갔어?” “이거 이거 뭐에요?” “내가 이래 요새 정신이 없어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윤정희 씨가 그의 연기생활 50여 년의 마지막 작품에서 알츠하이머를 연기한 ‘시(감독 이창동)’라는 영화의 대사이다. 2010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할머니 역을 맡아 연기력을 선보이며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LA비평가협회상과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를 받은 작품이다. 최근 그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파리에서 10년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으며, 딸과 막내 동생의 얼굴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지구촌 노인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 된 것 같다. 뇌 분야의 전문가는 초기에는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 감퇴와 언어능력 저하, 시공간파악능력 저하 등 종국적으로는 정신행동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