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축조된 만석거가 지난 18일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D)에서 세계관개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국제관개배수위원회에 수원의 축만제와 김제의 벽골제를 신청하여 세계관계유산으로 선정되었었다. 올해에는 만석거를 신청하여 국제관개배수위원회의 세계유산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얻게 되었다. 국제관개배수위원회는 유엔 산하기구로서 전 세계의 농업활성화를 위한 수리기반을 연구하고 보존하며 이를 지원하는 국제기구이다. 이 기구에서 선정된 역사적인 저수지 혹은 농업용 관개시설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선정하는 세계유산과 거의 동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도의 대표적인 저수지인 만석거의 세계관개유산 등재는 매우 의미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만석거는 조선후기 농업개혁의 출발지이다. 정조는 화성축성의 근본 이유를 만석거와 같은 농업용 저수지를 만들고, 저수지 인근에 국가소유의 국영농장인 대유둔을 설치하여 토지없는 백성들이 안정되게 농사를 짓게하는 혁신을 추진하고 이를 성공시켜 8도에 보급하여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즉 화성신도시 건설이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개혁사상에서 출발한 것이고 그 중심에 만
하늘이 떴다. 좀처럼 뜨지 않던 하늘이, 내리천 둑방길 걷다 문득 올려다 본 그곳에 구름 몇 장 흩뿌리며 환하게 떠올랐다. 쪽빛 뚝뚝 떨어져 내릴 듯 청아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저 가을 하늘을 마주하면 나는 영락없이 아이가 되고 만다. 만 가지 말을 머금고도 함부로 쏟아내지 않는, 한없는 품을 갖고도 자랑하지 않는, 늘 그 자리 지킬 줄 아는 어버이 같은 저 하늘을 나는 참 좋아한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늘의 낯빛은 마치 사람과도 같다. 오늘처럼 만삭의 알곡들을 지천으로 흩뿌리고 샛길, 둑방길, 산 언덕배기 드문드문 코스모스 꿈인 듯 뿌려놓은 가을이면 점잖게 높이 떠 빙그레 웃고 있다. 마치 그 옛날 가을걷이 한창인 논밭을 뒷짐 지고 걸으시던 아버지처럼 말이다. 꽝꽝 언 도심을 회색으로 기웃거리던 겨울 하늘은 봄 더불어 화색이 돌다가 여름이면 이글거리는 태양에 맞서 대지를 보살피느라 낮게 부산을 떠는 듯도 하다. 마치, 갈등에 시달리다 뿜어내는 한숨같은 비, 우르르 쾅쾅 한꺼번에 쏟아내는 그 날 그 하늘은 감히 바로 보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져 우두커니 보게 된다. 마치 성난 아버지의 낯빛처럼 그렇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먼저 손 내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당혹감을 주는 여인의 누드이다. 우선 여인의 나체가 눈부실 정도로 밝은 금빛을 띠고 있다. 티치아노로 하여금 베네치아에서 큰 명성을 얻게 하였던 바로 그 빛깔이다. 여인의 실루엣은 여느 여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적당히 살집이 있어 부드럽게 흐른다. 하지만 이 여인의 나체는 그 어떤 누드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내게 이 그림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금빛 나체보다는 화가를 주시하는 여인의 당당한 시선 때문이었다. 그 여인은 그 시절 여느 나체의 여인이 그러하듯 은밀하게 혼자만의 공상에 빠진 여인이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조금 어둡고 외진 장소에서 차분한 분위기로 나른하게 몸을 뉘어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더라면 보는 이들에게 조금 더 편안한 기분을 선사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편안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은 아니다. 너무나 당당할 뿐 아니라, 너무나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녀가 누워 있는 장소는 백주대낮의 방안 고급 소파 위이며, 화가를 또렷하게 직시하고 있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이 여인이 베네치아인답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녀는 우르비노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 활
할머니 간난이 /랑정 할머님 세상에 안 계시네만 그 이름만은 아버지 가슴에 남아 있어 추녀 끝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저녁이 되면 아버지는 노래를 부르시네 불효자는 웁니다 할머니 간난이 그리워 노래를 부릅니다 이 때는 발톱도 아니 자르신다네 -계간 ‘아라문학’ 여름호에서 모든 어머니는 모든 아들들의 신이다. 아버지의 어머니, 다시 말하면 할머니를 통해 시인은 어머니라는 위대한 존재에 대한 숭배를 시작한다. 동시에 어머니를 숭배하는 아버지의 따듯한 세계를 깊숙이 열고 들어간다. 한 행 한 행이 통렬하다. 어린 시절 어느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어머니에 대한 감정 속에는 어느 정도 배신감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어머니를 통해 시인도 자신의 어머니를 간절하게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버지인 랑승만 시인은 얼마 전 타계하셨다. 랑 시인은 마지막까지 홀로 어버지를 모신 효자 시인이다. /장종권 시인
송영무 국방장관의 국회 발언을 놓고 청와대가 엄중 주의하고 나섰다. 송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참석, 문정인 특보의 한미연합훈련 축소, 참수작전부대 창설 반대 발언 등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상대할 사람이 아니다. 학자로서 현실을 모르고 하는 발언들이다’라며 원색적 표현까지 썼다. 나아가 정부의 800만달러 대북 인도주의지원 시기에 대해 주무부처인 통일부와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가 하면, 북핵문제 대응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과는 반대되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국방장관의 제대로 된 업무파악여부를 떠나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불협화음은 가뜩이나 불안한 국민들을 더 불안에 떨게 하는 상황이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의 경고에 이어 급기야 청와대가 송 장관에 대해 엄중 주의 조치를 내렸다. 문정인 특보도 국제정세에 맞지 않은 발언으로 문제가 됐던 상황에서 이같은 외교안보라인의 충돌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인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나라를 비운 시기에 벌어지고 있는 자중지란이어서 참 걱정스럽다.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시기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가정폭력을 겪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 깊숙하게 내재된 분노감, 공포심, 불안감 등 심리적으로 억압된 감정을 치유하지 못한 채 일부는 똑같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경험한 아들 역시 자기의 자식들을 학대하는 사례도 자주 발견된다. 아주 좋지 않은 대물림을 하는 것이다. 가정폭력은 사람의 일생을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는 범죄행위다.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다. 학교 내에서 왕따나 구타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다가 견디지 못해 인생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6월에도 울산시 한 중학생이 동급생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하다 자살을 택했다. 이전에도 자살 시도를 했던 이군은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고, 학교폭력대책위원회도 동급생끼리의 흔한 ‘장난’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군은 결국 죽어서야 고통을 벗어났다. 지난 8월 전주에서도 여중생이 일부 학생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한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학생들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SNS 등으로 험담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경기 이후로 신문에 많이 언급되는 개념이 제4차 산업혁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신중년들도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제4차 산업혁명의 개념과 관련하여 유망한 산업은 어디인지 알 필요가 있다. 4차면 1·2·3차도 있었다는 얘기일 테고 그럼 1·2·3차는 뭐지? 혁명이란 단어가 들어가니 대단한 변화가 있었던 건가? 아님 기존의 정치, 경제 체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의미 같기도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다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한두 번은 해봤을 것 같다. 혁명의 개념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 의해 전복되어 대체된다는 정치적 용어로 많이 사용되나 산업혁명, 문화혁명 등과 같이 짧은 시간 기존 경제, 사회, 정치 영역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과정도 혁명이라고 불려진다. 산업의 개념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고 볼 때 산업혁명이란 과학적 발명과 새로운 생산방법의 도입으로 상품생산 방식의 혁신을 통해 인간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럼 1·2·3차 산업혁
세월이 지난 후 뒤돌아보면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는 평을 듣는 이들이 있다. 부정적인 평도 있지만 대개 긍정적으로 하는 평이다. 특히 예술계와 과학계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가까이 대중음악에서는 아직도 활동중인 신중현, 서태지, 미술에서는 고인이 된 백남준, 문학에서는 얼마 전 타계한 마광수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삶의 자리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자부심과 자존감이 높았다. 주변과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특질을 지녔던 사람들이다. 이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시대를 이끌었고 어느 순간, 한 시대의 획을 그리기도 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콜럼버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뉴턴, 정약용, 에디슨, 아인슈타인, 피카소, 버지니아 울프, 나혜석, 비틀즈, 빌 게이츠 등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그 시대에서는 소수자였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이 시대를 이끌었다는 말이 있다. 이들 덕분에 한 시대의 문화가 흥했고 세상이 변화 발전하였다. ‘이미지가 사상에 앞서 간다’라는 학설이 있다.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동 시대의 미술가의 작품(이미지)을 해석한 것이 그…
장난감을 소재로 한 유명한 영화로는 20여년전 상영된 ‘토이 스토리’를 빼 놓을 수 없다. 3편까지 시리즈로 제작된 이 영화는 장난감 중 인형을 의인화해서 사람과 장난감사이에 우정과 의리, 현실에 대한 이해와 긍정, 이별의 자세 등 사람살이의 덕목을 가르치는 내용이 호평을 받아 공전의 히트를 치며 흥행에 성공해서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현실 속 장난감의 역할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는 창의력과 정서발달, 심리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요즘은 어른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인공지능(AI)을 갖춘 애완로봇이라는 일종의 장난감이 반려자를 대신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일부에선 ‘장난감’을 완구가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 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장난감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거의 비슷할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가 많다. BC 2000년경의 이집트 유물이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완구에도 동물을 본뜬 것, 소리가 나는 것, 소꿉장난 도구, 인형 ·목마 ·공 등 오늘날의 장난감과 유사한 물건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중 인형은 당초에 종교적인 우상으로부터 출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빈 곳 /배한봉 벽 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풀꽃도 피어 있다. 틈이 생명줄이다. 틈이 생명을 낳고 생명을 기른다. 틈이 생긴 구석. 사람들은 그걸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 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팔을 벌리는 것. 언제든 안을 준비 돼 있다고 자기 가슴 한쪽을 비워놓은 것. 틈은 아름다운 허점. 틈을 가진 사람만이 사랑을 낳고 사랑을 기른다. 꽃이 피는 곳. 빈곳이 걸어 나온다. 상처의 자리. 상처에 살이 차오른 자리. 헤아릴 수 없는 쓸쓸함 오래 응시하던 눈빛이 자라는 곳. - 배한봉 시집 ‘주남지의 새들’中에서 우리의 삶에 있어 틈을 보여주지 않는 완벽한 사람보다는 다소 허술한 틈이 있는 사람이 좋을 때가 있다. 고형물로 이루어진 바위에서는 나무나 풀이 자랄 수 없지만 작은 균열로 틈이 생긴곳은 하나의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동·식물의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틈은 생태계의 낙원일 수 있고 생명의 터전이기도 하다. 화자가 시를 이끌어 감에 있어 틈은 사랑을 낳고 꽃을 피우는 곳이라 했다. 따라서 틈은 어쩌면 아름다운 허점인 것이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