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 ‘혁신’이라는 명제를 안고 고민해 온지 여러 해가 지나고 있다. 손에 잡힐 듯 정의를 내릴 시간도 되었건만 아직도 우리 사회와 기업에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혁신에 대한 정의가 두루뭉술하기만 하다. 혼란스러운 피로감으로 지쳐 있다는 평가도 있는 게 사실이다.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의 비교를 통해 3C(Cut-Create-Change) 운동으로 대표되는 혁신은 그러나 실행과정에서 기업의 구성원 개인마다 달리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혁신운동에서 버리는(Cut) 것에 대한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IMF 외환위기 때 인력구조조정을 통해 생존의 길을 모색한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그 이후 한 기업이 가지고 있는 맨파워에 맞게 업무절차를 단순화하고 최적화하는 부분에서는 미흡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Create) 변화를 꾀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버리는 것에는 인색했다. 그래서 맨파워에 비해 과중하고 소모적인 업무절차와 씨름하느라 비효율적인 부분이 늘어나서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마치 나중에 소용될지 몰라 예전에 쓰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집안에 쌓아 두어 악취가 나서 오히려 불결해져 집안 분위기까지 망치는 집착증과도 같다. 이론적으로 볼 때 기업이 정해진 인력 틀에서 새로운 제도나 절차를 도입하려면 과거 유사한 제도나 덜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제도는 폐지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폐지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것을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먹기만 하고 배변이 원활치 못해 변비 증세에 시달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기업이나 사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도입하기 이전에 기존 절차(Process)를 구조 조정해 최적화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시간과 인력이 무한정 존재한다면 세상에 해서 나쁠 일은 별로 없다. 일이란 대개 바쁘고 시한이 정해져 있어 손이 모자라는 법이라서 십원 가치의 일도 만원 가치의 일도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 내부에 해서 나쁠 게 없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을 위해 버려야 한다. 특히, 부가가치가 창출되거나 생산성이 극대화되는 절차를 찾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 기업의 특성상 고객과의 접점에서 부가가치가 발생한다면 고객과의 접점이 강화되어야 하고, 최고의 품질을 지향한다면 품질관리에 집중되어야 한다. 내부 직원 간에 견제와 통제를 위한 일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도록 규정되어 있다면 간소화해 고객과 품질을 위해 써야 할 것이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행정 간소화는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대처하기 위해 새롭게 시행된 제도들로 인해 효과가 반감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이 있다. 신용사회를 지향하는 간소한 제도를 운용하면서 신상필벌의 원칙을 구축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 우려를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신용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할 것이다. 정부중심의 관리형 제도로 무사안일을 지향하기 보다는 국민중심의 편리성과 합리성을 추구해 나가야 만이 효율적인 사회와 신용사회가 동시에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기업에 비해 과거 다소 정체되고 권위적이라는 평을 들어 왔던 정부투자기관에서 근무하면서 국민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변화에 동참하면서 더불어 우리가 버릴 것이 무엇인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자기 손에 갖고 있는 것, 익숙한 것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없다. 결국 혁신은 익숙한 것부터 단절해야 하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갖고 과거의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행태를 버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혁신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도 실패할 수 있으며 도태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은 필요하다. 급속히 변해가는 세상에는 새롭게 지어지는 집이 있고 무너지는 집이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해 그 안에 갇혀 있는 사람, 손에 익숙하여 버리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새롭게 지어지는 집에 옮겨갈 수 없으며 무너지는 집과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이처럼 요즘 같은 변화와 속도의 시대에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될 것은 익숙함과 타성에 젖어 여건이 바뀌어도 계속 고집하는 경직성이다. 바로 혁신이 버리는 것(Cut)을 전제로 추진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혁신 격차가 미래발전을 좌우한다고 한다. 혁신이나 변화를 생활화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온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혁신의 파수꾼으로 거듭나기 위해 변화하는 흐름에 과감히 버릴것은 Cut하자.
오 영 균 <토지공사 경기본부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