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일년에 2~3번 다녀오는데 이번에도 역시 동경, 시카고를 경유하는 여행경로를 선택했다.
탑승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가장 편한 자세와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한참 분주함이 끝나고 다들 자기 자리를 잡고 앉자 여기저기에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많이 들렸다. 내심 ‘아기들이 단체여행이라도 가나?’라며 유난히 많은 아기 탑승객에게 자꾸 눈이 갔다. 아기들의 보호자들은 엄마, 아빠라 하기에는 나이가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라 하기에는 너무 젊어보였지만 아기를 다루는 솜씨는 매우 침착하고 익숙해 사무적으로까지 보였다.
그런 느낌을 뒤로 하고 기내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초등학생을 목격했다 “몇 학년이야”라고 물었더니 3학년이란다. “무슨 일로 미국에 가냐”고 물었더니, 가족여행 가는데 시카고에서 제일 높은 건물에도 가고, 크루저도 탄다고 했다. 문득 내가 시카고 제일 높은 건물인 SEARS 빌딩 SKYLARK이라는 마천루에 가본 생각이 났다. 맨 꼭대기로 가기 전 건물에 대한 안내 영화를 상영하는데 짧지만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 영화는 없던 꿈도 생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꼭 이런 건물을 만들거나 건물 외형에 담겨진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리라는 소망이 생긴다. 자녀에게 꿈을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옵션을 제공하는 그 아이의 부모들에게 눈이 가면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저런 사소한 경험을 하면서 비행기가 목적지에 착륙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단체 아기들을 만났다. 세관을 통과하기도 전에 미국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들이 나와서 보호자들에게 아이들을 인도받고 있었다. 참 낯선 장면이면서도 그 느낌은 어찌나 착찹한지 한동안을 쳐다 봤다.
시카고에서 업무를 마치고, 조카가 있는 다른 주로 날아 갔다. 조카는 오랜만에 만난 이모에게 ‘Hey’ 하며 살짝 웃고마는 미국의 전형적인 십대이다. 조카에게 “커서 뭐가 되가 싶니?”라고 질문했더니 “모른다”라고 했다. 그래도 대답해 보라고 닥달을 했더니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다녀 왔는데 거기서의 호텔 생활이 너무도 인상깊었다. 세계 최고 호텔 탐방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스페인어랑 불어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어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무슨 유럽어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내심 ‘그래 니가 여기 있으니 그런 꿈도 꾸지 한국에선 영어하기도 빠듯한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부유층과 저소득층 아이들의 생활 양태에 대한 비교를 신문에서 보았다. 신문을 읽으면서, 이번 미국 여행에서 경험한 3가지 현상과 우리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서로 오버랩됐다.
입양가는 아기, 시카고 마천루를 관광하겠다는 3학년 어린이, 엄마따라 미국 이민가서 한국말 잊어버리고, 영어를 자국어로 삼으면서 유럽어 2개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내 조카, 버스값이 없어 걸어다닐 때도 있고 하루에 밥을 제일 잘 먹을 때가 학교 급식이라고 하는 우리 아이들. 이들 모두 소중한 대한민국의 미래인데 그 중 유독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마음이 간다. 과연 이들 네 부류의 경쟁력 차이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1) 입양아 : 커가면서 정체성으로 힘든 시기를 겪겠지만, 미국사회에서 성공은 국제적 성공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경쟁력이 있다.
2) 관광가는 3학년 어린이 : 유복한 환경에서 다양한 혜택이 자양분이 돼 본인의 노력만 있으면 누구보다도 쉽게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경쟁력이다.
3) 내 조카 : 영어권에서 성장해 마음만 먹으면 2~3개의 제3세계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경쟁력이다.
4) 우리 아이들 : 쉽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 불편함이 무엇인지 충분히 아는 아이들이다. 보다 편리하고 안락함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되면, 오기로라도 꿈을 만들어 성취할 수 있는 악바리 정신이 경쟁력이다.
1), 2), 3)의 아이들은 4)가 갖고 있는 악바리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지만, 4)의 아이들은 환경만 주어지면 충분히 1) 2) 3)의 경쟁력을 다 가질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1), 2), 3)의 환경을 제공하고, 그 누구보다도 큰 경쟁력으로 부모들의 가난을 혼자서 감당하지 않고, 자라서 3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며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제 그 방법은 가진 자들이 찾아야 할 때이다. 이 땅에 실종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제는 찾아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강 부 경 <e-TNG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