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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일까. 봄을 시샘하는 것일까. 비가 온다. 바람이 분다. 저녁이 되자 잠시 멈추었던 어제 낮부터 쏟아 붓듯 내리던 비는 밤이 깊어가자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다. 밤 내내 내리던 비가 지금도 창밖을 적시고 있다. 장마 비처럼 내린다. 한 낮인데도 밖은 노을 진 어느 숲길처럼 어둑하다. 바람 거세어 나무들 요동치듯 흔들린다.

나는 오랜만에 음악을 틀어 놓았다. Mendelssohn의 ‘Songs without words’이다. ‘말이 없는 노래’라는 뜻으로 ‘무언가(無言歌)’라는 제목을 지닌 아름다운 피아노곡이다. 사실 ‘무언가’라고 이름 지어 부를 일도 아니다. 말이란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고 소리이다. 말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것이다.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마음이라는 영혼의 울림통을 통하여 수많은 마음의 말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말에 사로 잡혀 있다. 제 말만 오랜 동안 하다 보니 잘 듣지 못하게 되었다. 들리는 소리라고 해봐야 대체로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 소리나 취객들의 고함 소리 정도일 뿐이다. 소리다운 소리를 들어 본지 오래되었다. 그러다보니 소리는 늘 시끄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소리를 느끼는 훈련을 해 본 적이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그들이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피폐해진 우리 마음이 조금은 안온해 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깊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봄이 전하는 자연의 소리들을 마음에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우리의 고단한 삶이 위로를 얻게 될 텐데 말이다.

잔잔한 피아노의 이어지는 음들이 빗줄기를 따라 마음으로 젖어든다. 집 안은 피아노 소리 가득하고 밖은 자연의 소리 가득하다. 빗소리, 바람 소리, 나뭇가지 흔들리며 부딪히는 소리, 나뭇잎 우르르 떨며 몸 움츠리는 소리, 열린 창문 삐걱대는 소리,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들이다. 들려오지 않는 자연의 소리들도 있다. 그저 마음으로 느끼며 나눌 뿐이다.

내리는 빗줄기에 대지의 열기가 식으며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마치 꿈속처럼 느껴진다.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듯하다. 다른 이들의 삶을 아무런 느낌 없이 바라보는 것 같다.

 

멀리서 전조등을 환하게 밝힌 자동차 한 대 지나간다. 남겨두고 온 땅에도 비가 오고 있을까. 바람 불고 있을까. 나의 지나온 삶이 남아 있는 땅이다. 지나온 삶이 남아 있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땅이다. 그 땅에도 이렇게 바람 불고 비가 오고 있을까. 지나온 삶은 지나온 삶대로 살아가라고 남겨 두고 나는 이곳에서 창가에 기대어 비 내리는 숲길을 바라본다. 지나온 삶은 지나온 삶대로 그리움 품어 안고 살아가라고 비켜서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조용하다. 빗소리 바람 소리 요란하지만 마음으로 젖어들어 밖은 고요하기만 하다. 깊은 고요함이다. 봄이 왔다고 저마다 목청껏 울어대던 새들도 조용하다. 모두들 나처럼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지나온 제 삶을 바라보고 있을까. 봄 시새우는 거센 바람에 마음의 울림이 사라질까 저어하여 제 몸 품고 있을까.

나뭇가지들 사이로 새 한 마리 보인다. 날개를 한껏 접어 올려 온 몸을 감싸고 있다. 고개를 움츠려 얼굴을 몸속에 파묻었다. 저렇게 내내 비를 맞고 있으려나.

비가 와서 인지 몸이 선뜻하다. 커피를 탄다. 물을 끓인다. 물 끓는 소리와 함께 열린 창으로 빗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오랜 동안 떨어져 있던 연인들이 만난 듯 잘 어울린다. 낮은 음은 높은 음을 이끌며 조화를 이루는 듯 하고 가는 음은 굵은 음에 기대어 어울리는 듯 하고 작은 소리는 큰 소리를 감싸며 가슴으로 젖어든다.

커피 향이 깊다. 창가로 몸을 돌린다. 아, 새 한 마리 창가에 앉아 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새인가. 그런가 보다. 새 한 마리 더 날아와 곁에 앉는다. 사랑하는 사이인가. 나란히 앉아 부리를 부비더니 이내 서로의 털을 고른다. 그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새들이 놀랄까 저어하여 그 자리에 기대어 창을 바라본다. 새들을 바라본다. 새들도 힐끗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날아가려나. 저들이 날아온 숲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그들이 날아온 숲에도 여전히 비가 내린다. 새들도 나도 모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조용하였다. 마음 가득 빗소리 요란한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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