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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버드나무 가지마다 여린 새 잎이 돋았다. 노란 개나리 작은 꽃잎들이 살랑살랑 이는 바람에 흔들리며 봄이 왔다고 말한다. 뿐인가. 수선화들도 노랗게 꽃을 피웠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봄이다. 그 봄이 개나리, 수선화, 버드나무에 찾아 들었다. 온 산하가 봄이 된다. 완연한 봄이다. 어제 저녁 가볍게 내린 비로 하늘은 티 한 점 없이 맑다. 마치 깊어진 가을 하늘같다. 봄을 맞는다.

사람들 속에 찾아 온 봄을 나도 맞이하기 위해 오랜만에 도심을 가로지는 강가로 나갔다. 강물을 끌어 들여 커다란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수면에 천둥오리 떼들 물결을 따라 한가로이 흐른다. 날아가던 천둥오리 한 마리 수면 위로 내려앉는다. 오리가 나는 것을 보며 신기한 느낌이 든다. 오리도 새인데 신기할 것 없는 일이다. 오리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제법 큰 물고기인데 몇 번 입질에 물고기의 몸은 보이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오리의 모습 또한 신기하기만 하다. 신기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호숫가를 걷는다. 호숫가에 벚나무 빼곡하다. 활짝 핀 분홍 목련이 벚나무 뒤에 서 있다. 그 모습이 사뭇 외로워 보인다. 다가선다. 내 곁의 목련은 이제 겨우 꽃봉오리가 맺혔을 뿐인데 그 곁의 목련은 흐드러져 꽃잎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같은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무들의 삶도 이처럼 다르다. 왜 이렇게 다를까. 그 다른 삶의 모습들이 오늘따라 슬퍼 보인다. 슬픔은 그대로 목련에게 남겨 주고 호숫가로 돌아온다. 곧게 뻗은 벚나무들이 가지런하게 서있다. 벚나무 가지마다 꽃봉오리들이 맺혔다. 목련처럼 쫓기듯 흐드러지게 피어 떨어진 꽃봉오리는 하나도 없는 듯하다. 모두들 가지런히 아주 자그마한 분홍빛 꽃봉오리를 맺었다. 이제 피어오르면 담홍색 꽃을 활짝 피우겠지만 아직은 여린 분홍빛이다. 간혹 붉은 빛에 가까운 꽃봉오리들도 보인다.

호숫가를 걷고 있는 내 곁에서 한 낚시꾼이 낚시를 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바라본다. 낚시 줄의 끝이 파르르 떨리며 흔들린다. 손바닥만한 물고기 한 마리 ‘파다닥-파다닥-’ 몸 뒤집으며 끌려온다. 바라보다 줄 끝에 달려온 물고기와 눈이 마주친다. 그 눈빛이 선하다. 서글프다. 마음이 아프다. 어찌해야 할까. 어쩌지 못하고 이내 발걸음을 돌린다. 몇 걸음 내딛자 죽은 물고기들이 보인다. 수면 위에 떠 있다. 여기저기 살점이 뜯긴 흉한 모습이다. 낚시꾼들이 잡은 물고기들을 호수에 버린 것이겠지. 날카로운 낚시 바늘로 인해 입가가 찢어지는 깊은 상처를 입은 물고기들이 더 이상 제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끝내 삶을 끝낸 것이겠지. 죽은 것이겠지. 제 삶을 다 살아가지 못한 물고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저리다. 깊이 저려온다.

 

눈앞에 비틀린 벚나무들이 나타난다. 앞서 있던 벚나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온 몸 비틀며 자라고 있다. 가지들도 비틀려 있다. 몸통에는 여기저기 혹 같이 생긴 것이 돋아 있다. 자라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보낸 옹이들일까. 그 옹이들이 혹 같은 둥근 모습으로 변한 것일까. 그 모습이 참으로 기이하다. 벚나무들 중에는 저렇게 생긴 것을 보지 못했다. 원래 저런 수종이 있는 걸까. 온 몸에 혹을 품어 안고 있는 벚나무들이 눈앞에 줄지어 서있다. 그들의 가지에도 분홍빛 꽃봉오리들이 맺혀있다. 다가선다.

‘아-!’ 나무의 줄기 곳곳에 부스럼처럼 솟아난 옹이를 닮은 혹마다 분홍빛 꽃봉오리들이 자라고 있다. 자세히 들여 본다. 나무의 밑둥치이든 줄기이든 옹이를 닮은 혹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분홍빛 꽃봉오리들이 움트고 있다. 가만히 들여 본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서 자라온 오래된 슬픔 같기도 하고 지나 온 내 삶의 상처 같기도 하였다. 지나 온 내 삶의 깊은 아픔들이 상처로 남아 분홍빛 꽃봉오리를 피운 것만 같았다. 반가움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서러움에 눈물을 뚝 뚝 흘릴 것만 같았다.

내 삶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30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했던 나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내 젊은 날 그렇게 싸웠던 독선과 아집의 모습들을 오늘 어쩔 수 없이 다시 바라보며 진저리치고 있는 내 삶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 삶을 버릴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내 삶은 그만한 의미를 지녔던 것일까. 실없이 그런 생각에 젖는다. 실없는 일이다. 흘러간 삶을 바라보며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다. 그래, 벚나무 꽃 잎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날 다시 찾아와야겠다. 수 천 그루 벚나무 바람에 제 삶 띄워 보내는 날 다시 와야겠다. 바람에 흩날리는 담홍빛 꽃잎들 시리도록 내 가슴에 젖어드는 날 다시 와야겠다. 그 날 그렇게 지는 꽃잎들 바라보며 흘리지 못한 눈물을 뚝 뚝 흘려야겠다.

봄이다. 가슴 시린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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