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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두 시간 반이나 달려간 쉐난도(Shenandoah)의 깊은 산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산허리를 돌고 돌며 굽이쳐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올라온 산은 아직은 겨울의 끝에 서 있었다.

 

지나온 저 길의 끝 사람 사는 세상에는 길마다 개나리 샛노란 꽃을 피워 지나는 봄바람에 살랑이고 수선화도 함초롬히 하얗고 노란 꽃들을 피웠는데 길의 또 다른 끝인 이 산중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지나간 겨울 내내 헐벗은 가지로 모진 강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서 있던 포토맥(Potomac) 강변의 참나무들도 봄을 맞아 어리고 여린 잎들을 한껏 피워내었건만 깊고도 멀리 흐르는 쉐난도 강을 바라보며 서있는 이곳의 참나무들은 아직 여린 잎들을 피워내지 못하였다.

 

사람들 살아가는 구름 아래 저 땅은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던 벚꽃 바람에 날리어 그 짧고 아름답던 찬란한 삶을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을 시리게 하더니 구름 지나는 이 깊은 산은 여린 잎 하나 아직 피워내지 못한 나무들 가득하여 지나는 이들의 가슴을 눈물짓게 한다.

아직 산 중은 겨울이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려 설레는 가슴 부여잡으며 달려왔건만 이곳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산은 그저 머물러 있어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산은 봄을 품고 있었다. 한껏 물이 오른 벗겨진 나뭇가지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고 발바닥으로부터 느껴지는 따뜻한 흙의 온기도 이 깊은 산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숲 곳곳에 쓰러져 있는 나무들 역시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봄이 오며 따뜻해진 날씨로 단단하게 얼었던 땅이 녹으며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던 큰 나무들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쓰러진 것이다. 첩첩 산중 깊은 골짜기를 돌아 나오는 골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그 뿐인가. 계곡마다 흐르고 있는 맑은 물 또한 지나는 이들 별로 없는 이 깊은 산중에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근다. 그 춥던 겨울 따뜻한 땅 속을 지나온 물이지만 차다. 겨울 내내 내리고 쌓였던 그 많은 눈이 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니 차가운 것이 당연하다. 차고 맑은 기운이 심장에 다다른다. 온 몸으로 퍼진다. 온 몸으로 번져 나가는 찬 기운 뒤로 슬그머니 그리움이 찾아 든다.

개울에서 거머리에 물리며 물고기를 잡던 철없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작은 희망을 담아 종이배를 띄우던 날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어 그리움을 말한다. 아직도 네 가슴에 그리움이 남아 있느냐고 묻는다. 아직도 그리워할만한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느냐고 묻는다.

 

아직도 마음 가득 희망을 품고 살아가느냐고 묻는다. 아직도 네 삶 전부를 바쳐 사랑했던 가난했던 이들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있느냐고 묻는다. 아직도 네 삶을 살아갈 용기가 남아 있느냐고 묻는다. 아직도 네가 받게 될 마음의 깊은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의 자리가 남아 있느냐고 묻는다.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지난 가을 떨어졌던 마른 나뭇잎들이 떠내려 오고 있다. 나도 발 곁에 있던 나뭇잎 한 장 주워 흐르는 물에 실려 보내며 말한다.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나무들 수런거리는 소리, 봄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벌레들 소리, 땅이 움찔거리는 소리 등 많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마음 그대로 품어 안고 어느 산자락의 끝에 서니 눈앞에 산이 첩첩하다. 첩첩한 뫼와 골마다 바람 따라 구름이 지난다.

멀고 가까운 그 뫼와 골마다 수많은 생명들이 제각기 제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일면식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지.

저들이 저들의 삶을 살아가듯 나도 나의 삶을 저들처럼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지나는 구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올라 왔던 길을 내려간다. 지나온 길인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온 길을 내려가며 나무들을 바라본다. 나무들의 가지 끝이 모두 조금씩 부러져 있다. 꼭대기의 가지들은 더욱 심하게 부러져 있다.

저 첩첩 산중을 넘어온 거센 바람들에 꺾인 것이리라.

바람에 꺾인 그 자리에 새 살이 돋아날 나무들을 바라보며 오르던 길을 내려간다.

바람에 꺾인 그 자리에 새롭게 돋아날 여린 잎을 바라보며 지나온 길을 지난다.

아직은 겨울의 끝에 서 있는 봄날이었다.

최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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