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내린다. 지난 밤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칠 사이도 없이 내리고 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다. 창 곁에 기대어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 난지 여러 날이 되었건만 아직 뒤뜰에는 여린 잎 하나 피어내지 못한 헐벗은 나무들이 있다. 그 나무들도 비를 맞고 있다. 새 한 마리 날아와 나무 꼭대기에 앉는다. 참새인가. 아주 작은 새다. 비를 맞고 있다. 고개 기울여 바라보니 참새인 듯하다.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 날아와 곁의 가지에 앉는다. 다섯 마리이다. 굵은 빗줄기들 사정없이 새들의 몸으로 파고든다. 새들은 모두 비에 젖었다. 푸드덕 푸드덕 새들의 날개 짓 소리가 창 너머에서 들려온다.
그 곁에 유별나게 추웠던 지나간 겨울에도 잎 무성하여 푸르렀던 전나무들 무리지어 서 있는데 왜 비를 피할 길 없는 헐벗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까. 전나무 가지에는 저보다 몸집이 큰 새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그 새들에게 내어 쫓긴 것일까.
새 한 마리 푸드덕 날개 짓하며 날아오르자 다른 새들도 뒤를 따른다.
비를 피해 몸을 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리라.
흠뻑 젖은 날개로 안간힘을 쓰며 날아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갈 곳 잃은 이들을 보는 듯 안쓰럽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난 비에 떨어져 내린 벚꽃이 생각났다.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벚꽃 바람에 날릴 사이도 없이 비에 젖은 채 땅에 떨어진 벚꽃이 떠올랐다. 벚꽃은 저 홀로 피었다 저 홀로 졌다. 이런 저런 말을 하던 사람들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지나온 겨우 내내 설레며 기다리던 봄을 맞았건만 연일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두 주 전 찾았던 쉐난도(Shenandoah)의 깊은 산중이 다시 그리워졌다.
이제는 그곳에도 봄이 왔겠지.
아무리 지나온 겨울이 모질고 길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산 구석구석 봄이 왔겠지.
나무들 저마다 여린 잎 틔운 채 맞이할 봄날에 대한 설렘으로 수런거리고 있겠지.
나는 산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간단한 짐을 꾸렸다. 하룻밤이라도 산에서 머물고 싶었다. 지난 가을 바람에 출렁이던 나뭇잎들 은빛으로 빛나던 그 산길을 다시 걷고 싶었다. 겨우 내 몸 움츠려 봄을 기다려온 생명들 봄을 맞은 설렘 가득 찬 있는 숲길을 걷고 싶었다.
책꽂이 서랍에 넣어 두었던 자그마한 책자를 꺼내 들었다. 깊은 산이 품고 있는 산길들을 꼼꼼히 적어 놓은 책이었다. 책을 펴들 사이도 없이 책갈피에서 붉은 잎 하나 떨어졌다. 바싹 마른 잎이다. 지난 가을 주웠던 참나무의 어린잎이었다. 미처 자랄 사이도 없이 어린 잎 그대로 붉어져 겨울을 맞은 잎이다. 나뭇잎은 작년 가을 깊은 산길에 만난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 본다. 수맥이 잎 구석구석까지 가지런히 뻗어 있었다.

이 수맥들을 통해 많은 영양분과 수분이 흘러들었으리라.
숲의 모든 것이 깃들었으리라.
이 작은 나뭇잎에도 자연이 깃들어 있다. 햇살이 늘 따스하게 보듬어 품던 나뭇잎이다. 바람 불어올 때마다 ‘쏴아~ 쏴아~’ 화답하며 사랑을 나누던 나뭇잎이다. 바람을 따라 하늘을 지나던 구름들 빗줄기로 내려오면 제 몸으로 한껏 끌어안던 나뭇잎이다. 자연의 생명으로 충만했던 나뭇잎이다.
그랬었나 보다. 아마도 그랬었나 보다.
가을 숲 곁으로 바람 불어올 때 마다 나뭇잎들 수백 수천의 풍경이 울리는 듯 찰랑거리고 출렁거리던 이유가 아마도 그래서였나 보다. 가을 숲을 지나는 이들의 영혼에 새겨졌던 지난 세월의 깊은 상처가 깨끗이 씻어진 이유가 아마도 그래서였나 보다. 나뭇잎마다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비를 품어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나뭇잎을 바라본다. 나뭇잎도 나를 바라본다. 나를 보며 말한다. 지난 가을 미처 다 하지 못하였던 말들이다. 마음 깊이 묻어 두었던 말들이다.
생명이란 그렇게 쉽게 움트는 것이 아니에요. 이름 모를 풀 한포기가 자라는 것도 진달래 봄 산을 붉게 물들이는 것도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것도 오랜 날들을 기다려왔기 때문이지요. 생명이란 피어날 수 있을 때 피어나는 것이지요.
봄이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에요. 하늘의 기온과 땅의 기온이 같아져 얼었던 땅이 녹아야 하지요. 얼었던 땅이 녹으면 땅 속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하지요. 겨우 내내 얼어 붙어있던 계곡에도 물이 흐르기 시작하지요.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겨우 내내 모든 활동을 멈추고 있던 나무들은 조금씩 물을 마시며 봄을 맞을 준비를 시작하지요. 길고도 매서웠던 겨울 언 몸을 햇살에 녹이며 여리고 어린잎을 틔울 준비를 하지요. 숲과 나무들은 그렇게 기다리며 봄을 맞지요.
생명이 움트는 것은 기다림이지요.
봄은 오랜 기다림이지요.
숲이 봄을 맞는 것은 기다릴 줄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기다리세요.
기다리세요.
붉은 참나무 잎의 말이 들려온다.
그런가. 기다려야 하는가.
붉은 참나무 잎 조심스레 책갈피에 다시 끼워 넣는다.
산으로 떠날 준비를 하며 바라본 창 너머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