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4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일을 제정하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5월 21일은 ‘부부의 날’, 6월 10일은 ‘6·10 민주항쟁 기념일’, 그리고 10월 5일은 ‘세계 한인의 날’로 각각 제정되었다.
‘부부의 날’이 제정된 것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한편, 화목한 가정을 마련하고 평등한 부부관계를 확산시켜 나가자는 취지이다. 또 정부가 ‘세계 한인의 날’을 제정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에 우리 민족이 진출, ‘한글 문화권’을 창출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의 한민족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켜주자는 취지이다. 특히 정부가 ‘6·10 민주항쟁 20년’을 맞아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것은 6·10항쟁이 20년 만에 국가에 의한 공식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년 전인 1987년은 온 나라가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전 두환 등 신군부 세력과 맨 주먹으로 맞서 싸우던 시절이었다. 그 해 1월 초 발생한 서울대 생 박 종철 군의 고문치사 사건은 6·10항쟁의 도화선이었다.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고문 경찰관의 처벌과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군사정권에 대항했다. 이에 전 두환 정권은 ‘4·13 호헌 발표’를 통해 개헌 주장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 발표는 군부 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지를 자극한 셈이 되었다. 마침내 6월 10일에는 전국 57개 도시에서 2백만 이상이 참가하는 해방 이후 최대의 시민 항쟁을 촉발했다. 그 달 6월 29일, 민주정의당 노 태우 대표의 ‘6·29 선언’ 발표로 개헌 주장은 승리했다. 그 해 10월, 오늘의 헌법이 제정된 것이다.
6·10항쟁 이후 2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지난 100년 동안의 변화를 껑충 뛰어넘는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겪었다. 정치적으로는 권력의 민주화를 달성했고, 경제적으로는 IMF체제의 수난을 겪는 과정에서 사상 초유의 빈부 양극화라는 난치병을 얻었다. 또 지식인 사회는 백가쟁명 시대로 들어서면서 황우석 사태 같은 돌출사태가 발생, 지식인의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국가가 어떤 날을 특별히 기념일로 제정한 것은 단순히 그 날을 기념하고 기억하자는 뜻을 넘어 그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년의 민주화 과정을 거쳤지만 아직도 미진한 분야가 너무 많다. 민주화는 골고루 더욱 숙성되어야 한다. 이 과업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