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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에세이]하늘을 흐르는 강

 

산허리를 굽이치며 올라온 길은 하늘을 향해 열리며 산을 넘고 있었고 나는 그 길을 따라 산을 넘었다. 구름도 길을 따라 오는 듯했다. 간간이 내가 쉴 때면 구름도 곁에 머물렀다. 산을 넘을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그저 망연했다. 그것은 다른 세상이었다.

 

골마다 피어오른 구름으로 산은 구름에 갇혀 있었다. 외롭게 떠 있는 섬 같았다. 나는 출렁이는 물결을 헤치며 그 섬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망망대해였다. 산과 뫼는 물결처럼 굽이치며 끊임없이 넘실거리고 구름은 해무처럼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산인 듯 바다인 듯 했다. 길은 있어도 어디까지 닿아 있는 길인지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길로 들어서며 나는 때로 위태하고 때로 평온했다.

길 아닌 길이 어디 있으랴.

흐르면 길인 것을.

잠시 길을 세웠다. 구름 지나는 사이로 내려다본 산 아래 저 편에 쉐난도 강(Shenandoah River)이 장사진을 친 듯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241Km라는 먼 길 따라 흐르다 포토맥 강(Potomac River)을 만나 넘실거리며 하나 되어 흐르는 강이다. 그렇게 하나 되어 흐르기 위해 그 먼 길을 흘러 왔던가. 그렇게 하나 되어 흐르기 위해 그 긴 세월을 달려 왔던가.

구름이 지나는 곁으로 햇살이 비친다.

비가 올 듯 하늘이 흐르더니 해가 나려나.

마음 분주해진다. 서둘러 숲으로 들어간다. 숲은 고요하다. 깊은 산에는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 산기슭에는 여린 잎 틔운 나무들로 푸르건만 산 속은 아직 헐벗었다. 산길을 따라 걷는다.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산길의 갈래마다 나무에 표식을 그려 놓았다. 삶에도 이런 표식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깊은 산 보다 더 깊고 수많은 갈래 길보다 더 많은 길이 있는 인생길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긋난 인생길 살아갈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나무에 그려진 표식을 따라 걷는다.

숲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아직은 헐벗은 탓인지 나무들마다 제 삶을 흔적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딱따구리가 파 놓은 구멍이 뚜렷이 보이는 나무도 있고 지나간 여름이나 가을의 어느 날 곰에 의해 껍질이 움푹 뜯겨나가고 줄기가 꺾인 나무들도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한 뿌리로부터 두 줄기로 자란 흰 참나무도 보인다. 새싹이었던 어린 날 사슴이 싹의 머리를 먹은 탓에 두 줄기로 자란 나무이다. 다시 사슴이 와서 먹더라도 한 줄기는 살아남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나무에 담겨 있었다. 다시는 제 삶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소망이 나무의 두 줄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밑둥치에서부터 베어진 큰 흰 참나무는 줄기를 세 방향으로 뻗으며 자라나 있었다. 온 힘을 다하여 제 삶을 지켜가기 위한 절절함이 줄기마다 서려있었다. 제 삶을 지켜가기 위한 참나무의 마음을 아직도 봄이 오지 않은 이 숲길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나무들도 저렇게 살아가는 것을.

나무들도 저렇게 온 마음 기울여 어긋난 제 삶을 바로잡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나무들도 저렇게 두 줄기 세 줄기로 줄기를 뻗으며 의연하게 이 산을 지키고 있는 것을.

하늘이 흐려진다. 구름 사이로 비추던 햇살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비가 오려나.

하늘이 검어지더니 이내 비가 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숲을 나섰다.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굵어진 빗방울은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지열로 인해 그대로 기화되기 시작했다. 새벽 바다가 해무를 뿜어내듯 숲은 안개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해무로 덮인 바다처럼 숲은 안개로 덮여갔다.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숲을 벗어나자 기화된 빗방울들이 그대로 구름 되어 흐르고 있었다.

나무 드문 산허리 굽이진 목에서 골짜기를 바라본다. 가까이 있는 듯 멀리 있는 듯 첩첩한 뫼마다 구름 지나고 첩첩한 골마다 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구름들 하늘을 지나며 산을 에워싸 산 중은 그대로 바다였다. 흐르는 강물이었다.

그것은 구름이 아니었다. 구름이 아니라 강이었다. 하늘을 흐르는 강이었다. 골마다 피어오르던 구름들은 구름이 아니라 하늘을 흐르던 강이었다. 수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빗줄기가 되어 내렸던 하늘의 강이 다시 제 줄기를 찾아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구름 곁에 서서 하늘을 흐르는 강으로 돌아가고 있는 구름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흐르던 강줄기 땅으로 내려와 쉐난도 강으로 흐르고 포토맥 강으로 흐르다가 다시 제가 흐르던 하늘 강 길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길로 찾아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며 나는 불현듯 내 삶이 그리워졌다. 미치도록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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