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등장한 시점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고흐나 세잔 등 인상주의 이후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일 것이다. 서양의 추상화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채 100년도 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들에게는 추상화가 난해한 그림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어떤 형태인지, 그리고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상화 역시 형태가 있는 구상주의적 그림처럼 작가의 능력에 따라 깊이감과 수준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추상화를 제대로 감상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많은 그림들을 보고 많이 그려보지 않으면 제대로 감상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에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김홍태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수준 높은 추상화를 표현해내는 작가이다. 그의 그림을 처음 본 순간, 국내 추상작가 가운데서도 이렇게 밀도 있고 수준 높게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김홍태의 작품을 본 이후로 그의 전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의 작업 공간을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마치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을 가는 것처럼 즐겁고 들뜬 마음이었다.
분당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의 추상작품들은 왜 이처럼 느낌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의 작품만이 지닌 몇 가지 강점 중에서 하나는 대단히 감성이 예민하고 아이덴티티가 풍부한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다. 그의 추상화는 타고난 심미적 감성과 예술적인 끼를 넘어 자연스러우면서도 담박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는 색종이만한 조그만 면적에 하나의 선을 그리고 색을 칠한다 해도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감흥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담는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예전에 비해 조금은 텁수룩해진 것 같았는데 수염을 기르는 중이라고 하면서 빙그레 웃어보였다. 작가는 우리의 정서에 적합한 현대적인 추상회화를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좀 더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의 정서가 묻어나는 그림을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왠지 수염을 기른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상회화든지 구상회화든지 서양의 회화를 그대로 그려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적인 감성을 지닌 현대적인 추상회화로 거듭나는 데는 작가의 남다른 강단과 의지가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다. 어쩌면 수염을 기르는 게 강인한 이미지와 의지를 길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홍태는 조금은 작은 체구에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이지만 여러 번 만나보면 그가 그림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한 열정과 강단을 지닌 굳은 의지의 작가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한 면은 사람마다 지닌 독특한 체취와도 같이 그의 작품에서 느껴진다.
이년 전쯤에 뉴욕의 한 화랑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왔는데, 뉴욕의 화랑들은 혹시 작은 화랑이라도 분별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작가로서는 자신의 작품에 미적 감성과 독창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일이 된다. 필자는 그가 미국 화랑에서 눈여겨 볼만큼 좋은 작품을 그리는 좋은 작가라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또 다른 작업공간으로 이동하였다.
그의 작업 공간은 무언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면서도 차분한 실내는 작업을 하기에 더없이 편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소파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작가는 아주 오래 전에 그렸다는 자연의 풍경을 그린 그림에서부터 얼마 전 뉴욕에 갔을 때 그린 소호의 정경에 이르는 일련의 구상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자연 풍광이라는 흔한 소재의 그림이었지만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져 있어서 그의 추상 그림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가 안내한 방에는 외국 미술서적들을 비롯한 많은 자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일본에서도 많은 양의 미술책들을 사왔으며 그 책들과 함께 많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예순을 넘긴 나이임에도 그림에 대한 공부를 이처럼 열정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에 미술대회에서 도지사상을 수상하고도 부모의 반대로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아픈 추억을 지니고 있다.
필자는 많은 작가들을 만나봤지만 그림을 열정적으로 그리는 이들은 많아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위하여 자료와 서적들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그는 올봄 일본에서 개최한 ‘Salon blance 2007’에서 우수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Salon blance 2007’은 한국, 일본,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300명 이상의 세계적으로 유망한 작가들이 출품한 국제적인 예술축제이다.
김홍태는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다닐 때 추상화를 가르치던 박서보 선생의 영향을 받아 추상화로 전환한 이후로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 세계무대에 통할 수 있는 한국적인 추상화를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 그는 입신양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므로 화단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를 깊이 알고 있는 미술인들은 뛰어난 작품으로 그의 작품을 손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도 홍대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는 학생들이 김홍태의 미술 공간에 와서 자료 면에서 도움을 받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그의 스승 박서보가 제자들에게 논문을 지도할 때면 김홍태에게 자료적인 도움을 받도록 권한다. 그만큼 그는 항상 노력하고 공부하는 작가인 것이다. ■글=장준석(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