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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조선통신사 400년

이창식 주필

우리나라가 일본에 처음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를 파견한 것이 1607년(선조 40)이었으니까 올해로 401년째가 된다. 일본 쯔시마(對馬島)에서는 지난해 4월 ‘조선통신사 400주년특별전’을 시작으로 ‘제13회 조선통신사 유카리노마찌 전국교류대회’, ‘이시하라항(嚴原港) 마쯔리 쯔시마 이리랑축제’ 등 16가지 기념행사를 가졌다. 조선통신사에 관한한 한국보다 열성적인 곳이 일본 쯔시마다.

 

여유길(呂裕吉)을 정사(正使)로 삼은 첫 번째 조선통신사(504명)는 그해 1월 12일 한성(서울)을 떠나 6월 6일 에도(江戶:도쿄)에 도착해 도서교환의 예를 마치고 7월 7일 귀국했는데 이때 임진왜란(1592년:선조 25) 당시 토요토미히데요시 군대가 납치해 갔던 포로 1천18명을 데리고 왔다. 1811년(순조 11) 김이교를 정사로 한 12번째 조선통신사(328명)를 마지막으로 통신사제도는 폐지되고 말았다. 2004년 동안 지속된 조선통신사 내왕을 통해 정치, 경제, 교육, 예술 등을 배울만큼 배운 일본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속된 말로 군불 지피고 나서 부지갱이 태운격이다. 이후 양국은 이렇다할 교류가 없다가 1876년(고종 13)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나서 수신사(修信使)로 개칭되고, 김기수를 정사로한 일행 75명이 일본 선박 고류호(黃龍號)를 타고 일본에 다녀 왔다. 수신사란 동등한 입장에서 사신을 파견한다는 뜻이니 조선통신사 때와는 성격도 지위도 달랐다. 1880년(고종 17)에는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 왔는데 이들은 일본의 정치제도에 매료돼 개혁을 주장했다.

 

반면에 영선사(領選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김윤식은 이에 반대함으로써 개화파와 보수파로 갈라 서게 됐다. 그런데 쯔시마에서 조선통신사의 역사가 재현된 데에는 노태우 전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90년 5월 24일 일황이 초청한 궁중만찬회 석상에서 “270년전 조선과의 외교에 힘쓴 쯔시마 영주 아메노모리호슈(雨森芳洲)야말로 ‘성의와 신의의 교제’를 신조로 한 훌륭한 지도자”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이 한 마디가 쯔시마인을 자극해 오늘의 쯔시마 한류가 생겨났다. 쓸만한 말의 힘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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