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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전사불망

정행산 객원논설위원

중국 북경(北京)에서 서남쪽으로 약 15㎞쯤 떨어진 교외에 노구교(蘆溝橋)라는 다리가 있다. 12세기 말에 지어진 이 석조 다리는 일찍이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다리”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다리이기도 하지만, 1937년 7월에 발발한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이른바 ‘노구교사건’의 현장으로 더 유명하다.

빛난 역사와 천하제일의 문화 및 국력을 자랑하며 주변국들의 종주국으로 군림해온 대제국이 어느 사이 이빨 빠진 늙고 병든 처지로 전락해 일개 섬나라 일본의 먹잇감으로 한껏 유린당한 그 치욕스러운 역사의 현장이 바로 노구교이다.

1937년 7월 7일 밤, 노구교 근처의 중국군 군영 가까이에서 야간훈련을 하던 일본군은 갑자기 중국 군부대 쪽에서 들려오는 몇 발의 총소리에 놀라 훈련을 중단했다. 조선에 이어 만주까지 식민지화에 성공한 일본은 그렇지 않아도 중국 대륙을 통째로 점유하기 위한 야심을 키우면서 빌미를 마련할 기회를 엿보던 참이었다. 일본군은 즉각 “중국군의 일본군 기습공격은 일본에 대한 중국의 선전포고”라며 총공격을 개시하는 한편, 만주와 조선의 병력을 재빨리 베이징 쪽으로 이동시켜 전면전에 돌입했다.

단숨에 북경과 천진을 점령한 일본군은 그해 12월 수도 남경을 점령하고 무한에 이어 광동에서 산서에 이르는 남북 열 개의 성(省)과 주요도시 대부분을 점거했다.

이렇게 해서 노구교사건은 지나사변(支那事變), 곧 중·일전쟁으로 확대됐다. 현재 노구교 인근에는 ‘중국인민 항일전쟁 기념관’이 세워져 있고 기념관 석탑에는 ‘지난날을 잊지 말자(前事不忘)’는 격문이 새겨져 있다.

지금 일본과 중국은 군함 상호방문, 양국 해군 합동 군사훈련 등 군사교류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지난날을 용서하되 잊지 않으면서도 더불어 교류하고 공생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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