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러 섬에 처음으로 인간이 살게 된 것은 신석기 시대 이후로 알려져 있다.
농경문화가 시작될 무렵 일본은 약 100개의 씨족 국가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야마토조정(大和朝廷)이 등장하면서 4세기말 경 통일이 이루어졌다. 7세기 초 쇼토쿠(聖德)태자가 17조의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국가 형태를 갖추었다. 중세에 후지와라(藤原)씨가 천황 섭정을 담당할 때 내란이 일어나게 되고 하극상(下剋上)의 풍조가 만연되면서 전국시대를 맞았다. 이때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를 거쳐 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이르러 17세기 초 에도(江戶)에 도쿠가와 바꾸후(幕府)가 성립된다. 오만해진 일본은 16세기말인 임진과 정유년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 침입하여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우리나라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와의 교린(交隣) 필요를 느낀 일본은 1607년(선조 40)부터 1811년(순조 11)까지 12차례의 조선통신사를 받아들여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배울만큼 배웠다고 생각한 일본은 더 이상 통신사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뺨치고 아양 떠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1800년을 전후해 러시아가, 1853년 미국 제독 페리가 내항(來港)함으로써 일본은 개국을 단행했다. 1867년 바꾸후가 왕에게 정권을 이양함으로써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고 명치유신이 단행되면서 근대국가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문제는 그 뒤부터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1910년 한·일 합방, 1915년 세계 1차대전, 1931년 만주사변, 1940년에는 독일·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는 등 외침에 주력하였다. 1941년 소위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것이 패망의 단초가 되었으나 오늘날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부활했다. 틈만 생기면 침략하는 것이 일본이다. 독도 영유권 되풀이도 그 중 하나다. 더 이상 오냐오냐해선 안된다. 이명박 정부의 미래지향적 실용외교는 이제 수정할 때가 됐다. 외유내강의 실리외교가 그 대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