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여주소방서 박선용 소방교는 지난 9일 여주읍 연양리 금모래유원지에서 강물에 빠져 호흡과 맥박이 멈춘 남자 아이(2·오산시)를 심폐소생술로 되살려냈다.(본지 8월 11일자 14면 보도). 주위에서는 1초만 늦었어도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며 당시의 긴박했던 현장 분위기를 설명하고 박 소방교에게 “훌륭한 일을 해 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작 경기소방본부를 비롯한 관계부처에서는 아직까지 칭찬은 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소방관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조금만 잘못해도 감찰이 쫓아내려와 추궁하고 문책하는 관행적 사례에 비춰볼 때 잘한 일을 칭찬하지 않는 처사 또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최근 명성황후 생가 성역화사업 준공식과 쌀 국수 생산공장 준공식 참석을 위해 여주를 방문했으나, 이에 대한 격려 한마디 없었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상황을 반전시켜 상상해 보면 왜 칭찬이 필요한지, 왜 안타까운지 깨닿게 된다.
심폐소생술은 두 손을 마주 잡고 피시술자의 가슴을 눌러 충격을 가하는 응급처치법이다. 자칫 강하게 충격을 주면 뼈에 상해를 입힐 수도 있다. 그만큼 시술자의 부담이 큰 응급처치법이다.
만약 심폐소생술을 시술하다 가슴 뼈만 부러지고 목숨을 살려내지 못했다면, 그래서 유족들이 “소방관이 심폐소생술을 잘못해 뼈가 부러지면서 사망했다”고 민원을 제기했다면 어떻했을까. 아마 진상파악을 한다며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맥박도 끊기고 호흡마저 멈춘, 그것도 골격의 완성을 이루지 못해 연약하기 그지없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심폐소생술을 시술해 소중한 목숨을 살려낸 훌륭한 소방관은 왜 칭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직돼 있는 공직자들의 사기진작과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화재진압, 구조, 구급현장에서 혼신의 열정을 다하는 소방관들을 칭찬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소방관계 부처의 리더십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