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여인의 수난사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결과로 생긴 ‘환향녀’와 일제시대 정신대로 끌려간 ‘위안부’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내외법과 예기가 지배하던 시대를 누가 모른다 하였을까. 조선에서 곱게 자란 여인들이 하루아침에 포로가 되어 이역만리 노예시장에서 발가벗긴 채 수모를 겪고 그것을 거절하다 이슬처럼 사라졌을 영혼들이다. 그런데 청에 끌려간 부녀자들이 탈주, 귀환했을 때 조선 사회가 보여준 태도는 외면과 이혼청구서였다. 인간노예를 전전하며 당했던 그 치욕스런 나날보다 더한 고통을 안긴 셈이다. 결국 그들은 수십 년간을 어두컴컴한 골방에 갇혀 스스로를 자책하다 자결로 인생을 마감하거나 한 많은 삶을 살다 스러져갔다.
모두 나라 잃은 민초들의 불가항력이었지만 정작 그 결과는 비참했다. 남자들의 과오가 여기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환향녀’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바람을 많이 피우는 질 나쁜 여자를 칭하는 ‘화냥년’으로 바뀌었으니 다시 죄인으로 가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한 치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아예 나라마저 빼앗겨 아내와 딸을 또다시 일본군 위안부로 내몰았다. 광복 후 만신창이가 되어 조국을 찾은 이들에게 역시 냉대와 멸시를 했으니 좋지도 않은 역사의 답습이 더 우울하다. 그 때문에 일본은 물론, 한국의 남자들도 이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일말의 책임감이랄지 여하튼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지난 22일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아소 다로(麻生太郞)가 총리로 지명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에 1만여 명의 이른 바 조선인 징용자들을 강제로 노역시킨 규슈의 아소 탄광을 경영했고, 본인은 아소시멘트 사장을 지낸 적이 있다한다.
그가 말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라든지 작년 미 하원을 통과한 위안부 비난 결의 중 ‘일본군의 강제적 성 노예화’라는 기술과 관련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으며, 유감스럽다”라는 등, 그 전력에 비추어 동반자적인 한일관계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