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행복한 도시 수원”
수원시의 캐치프레이즈다. 그래서 브랜드도, “해피 수원.”
쉬우면서도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이 말들을 만든 현 수원시의 김용서 시장이 내가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고등동을 방문했다. 어쩌다 지나가다 들린 것이 아니라 미리 계획일정을 잡고 들린 것이다.
매년 연초에 의례히 있는 순시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정례적인 연두순시라 물론 동사무소가 우선적인 방문행차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나는 110만 수원시민의 시정을 이끌어가고 있는 시장을 정중하게 영접하였다. 의례적인 인사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개인적인 정분이 더 앞섰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제 민선 3기를 지나 민선 4기 중반으로 들어서는 마당에서 잠깐 회고해보면 행정 쪽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김용서 시장은 산적한 크고 작은 일들을 아무 탈 없이 잘 해결해 나갔고, 많은 치적을 쌓아 올렸다. 평소에도 존경했지만 막상 우리 관내에 오신다니 반갑기가 그지 없었다.
그와는 20년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터였다. 그가 일반 시민으로서 농기구사업을 하면서 나는 그곳을 자주 순찰을 다녔다. 얼굴을 자주 마주치면서 공무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두루 나누다가 많은 정분을 쌓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많은 시간이 있어서 부담 없는 내용의 대화를 많이 나눴지만 공직의 일을 하면서부터 시간이 그러한 한가함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
그저 먼발치에서 그저 건승하심을 기원하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우리 관할 주민자치센터에 오신다니 나로서는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를 맞는 김용서 시장도 파안대소를 했다. 이심전심인 모양이었다.
참석한 단체장과 주민들에게 나를 아우로 따뜻하게 소개를 하기도 했고, 민·관 행정협력의 주민치안성과에 격려도 보내주었다. 모두가 박수로서 그 답변을 했다.
성품이 자상하고 도량이 넓은 그는 하는 일 역시 그 폭이 크고 원대하였다. 일찍이 나는 알고 있었지만 동사무소에서 다시 듣게 되는 그의 업적은 숙연해서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수원시를 “세계문화유산의 관광도시로” 만드는 일과, “인재육성의 교육도시”, 그리고 “기업하기에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3대 목표를 정하였다고 했다. 영화문화산업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김시장은 효의도시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다 소외된 사람들을 일일이 챙기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경기도에서 해마다 평가하는 적십자회비를 일등하는 도시로 이러한 시민들의 협조에 더욱 분발하여 빈한한 이웃들을 열심히 돌보겠다고 했다.
또한 얼마 전에는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위해 여러 시민들과 그곳에 가서 식목한 일, 캄보디아의 한 마을에다 결연을 맺어 해피수원으로 명칭하고 학교를 세워주고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다는 것,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이끌고 다녀온 일, 거기다 문화와 스포츠산업에 과감한 투자를 한 사실 등을 섬세하고 진솔하게 주민들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이 모든 일은 시민들이 사랑과 봉사정신이 함께한 결과였다며 수원시민은 아름답고 위대하다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진짜 수원을 이끄는 일꾼이라는 감을 자아내게 했다.
언행이 일치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수원시의회 의장 시절만 해도 개인적으로 면담을 자주 할 수가 있는데, 이제는 이러한 공식석상에서 멀찌기서 말을 듣는 것으로 나는 만족해야 했다.
그가 얼마 전 신년회에서 장내의 요청으로 섹스폰을 불 때에는 그 구성진 가락이 마치 내 고향 땅 끝 마을에 앉아 쏘이는 해풍처럼 따사롭고 감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이제 이 수원이 또 다른 나의 고향임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