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는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가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아주 섬뜩한 이야기 하나가 있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만약에 한 명의 어린 아이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기라도 하면 이는 그 어린 아이의 목에 연자 맷돌을 걸고 깊은 바다에 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가르침이다.
이 이야기는 교육의 아주 중요한 본질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공교육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교육할 때 겪게 되는 어려움은 우리의 교육 구조가 학생 개개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학교의 입장이나 교육청의 지시사항을 먼저 생각하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학급담임의 눈에 30명 남짓한 학생들이 모두 눈에 다 들어오지 않고, 또 교사가 한 학생을 깊이 있게 만나고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면 꼭 학교의 방침이니, 교육청의 지침이니 하면서 이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이다.
진정한 교육은 예수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주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교육의 본질은 학생 전체가 아닌 한 학생이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되는가에 있다.
이제 전국의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하고 한 달을 보내고 있다. 아마도 학부모들의 최대의 관심은 자기 자녀의 학급 담임이 어떤 분일까 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웬만한 학생들은 벌써 자기 담임을 평가했을 것이다. 학생들은 싫든 좋든 담임 밑에서 1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담임교사는 적어도 학급에서 만큼은 절대군주 못지않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예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 본 부모들은 거의 대부분 한번쯤은 이런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교사에게 아무리 상처를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교사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 교사의 옳은 태도이다. 교직만큼 상처를 많이 받고 상처를 많이 주는 직업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담임교사는 늘 선인장 같은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원래 교직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며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는 직업인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학급담임제가 안고 있는 문제 때문에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이 담임을 선택하는 담임선택제를 시범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있기도 하고, 또 일각에서는 학급담임제를 폐지하고 교과담당제를 실질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하지만 의도야 좋지만 우리나라 공교육 제도 아래에서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물론 교과 담당 교사가 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생활지도, 인성교육, 가치교육 등을 모두 감당하고 또 학교의 행정 업무는 교사가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부서를 설치하여 그곳에서 처리하도록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육재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현 공교육제도 하에서는 이와 같이 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학교교육은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그 실효성은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문제의 초점은 지금 당장 교사에게로 맞춰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학급 담임의 역할을 점검해야 한다. 담임교사는 학급에서 교과지도 이외에 생활지도, 상담활동, 청소지도, 인성교육, 학급운영 등 수많은 일들을 다 감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질구레한 행정 업무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들 사이에 학급담임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교과만 담당한다면 고등학교의 경우 평균 하루 3시간만 수업하면 되는데 어느 누가 학급담임을 자진해서 하려고 하겠는가?
지금과 같은 교육환경 속에서 학급담임을 온전히 수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객기를 부리는 것을 수도 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나 우리 공교육이 바로 서려면 제일 먼저 학급담임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주고 이들을 지원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학급담임의 역할이 이처럼 막중하고 또 비담임보다 훨씬 더 많은 업무를 한다고 하더라도, 학급 담임은 한 학생의 인격과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면 있는 힘을 다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해야 한다. 그러하다면 교사는 자기에게 맡겨진 한 영혼의 목에 혹시 연자 맷돌을 매고 있지는 않나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교사가 교육의 참맛을 알기 위해서는 연자 맷돌을 생각할 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