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영화가 이 땅에 들어온 지 90주년이 되는 해다. 1919년 10월 27일, 첫 연쇄극 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된 것이 우리나라 영화의 시초로 기록된다.
이후 1세기도 지나지 않아 이 땅의 영화산업은 엄청난 규모로 발전했다.
관객 100만 명 돌파는 이제 가십거리도 못되며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배우의 기사도 톱기사감이 못될 정도로 질적·양적인 면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그러나 산업이라는 면에서 살펴볼 때, 이 땅의 영화는 아직까지 영세 수내가공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한국보다 훨씬 많은 인구와 극장이 있으며 전 세계의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 세계 국가를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
더불어 DVD, 블루레이, 케이블 판권 등 부가적인 판권 시장도 잘 정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엄청난 액수의 제작비를 들이더라도 그 이상의 이익창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인구 수와 극장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한국말로 제작된 작품은 해외 수출시 제약을 많이 받게 된다.
또한 인터넷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불법 다운로드를 부추기고 지적재산권을 무시하여 부가판권 시장 자체가 거의 죽어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한국 영화는 거의 대부분을 극장 매표 수익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인구와 극장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제한적 산업기반 요건 때문에 무한정 제작비를 늘릴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영화는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3가>라는 극히 제한적인 지역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캐스팅, 자금 조달 등 모든 것이 그렇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각 지자체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세트장을 이곳저곳에 지어가며 영화산업을 지자체 발전의 한 동력원으로 삼으려는 기척이 반갑기는 하지만 부천, 순천 등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그나마 유명무실하여 황폐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화산업의 진흥을 부르짖으며 세트장을 지으려는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세트장을 지어 놓은 후 그 땅이 황폐화되면 오히려 땅값이 오르는 이 땅의 이상한 법 체계를 이용하여 땅장사를 하려는 속내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나마 거시적인 측면에서 영화산업을 다뤄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경기도와 화성시가 추진하고 있는 미국 유니버셜 스튜디오 테마파크 유치다.
경기도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유치로 건설단계에서만 5조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4만9천 명의 고용 효과, 연 1천900억 원의 조세수입 증대 효과가, 운영단계에서는 연간 2조9천억 원 상당의 생산유발 효과와 5만7천 명 정도의 고용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경기도와 화성시의 노력은 가히 칭찬받을 만하지만, 이런 사업이 환경보전이나 지역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과연 예상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의 태동을 하고 있는 이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산업’이라는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다.
영화산업 자체가 언어적이나 지리적 제약을 많이 받는 분야라 하더라도 그 부가가치가 높다면, 우리는 하드웨어적인 측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측면, 즉 영화산업을 움직일 수 있는 콘텐츠의 생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적은 투자로 많은 효과를 보자는 것이 경제논리의 핵심이라면,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하드웨어적인 측면보다 콘텐츠 개발에 대한 지원과 육성을 통해 영화가 산업으로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영화산업 9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발전을 해왔으며 앞으로 더 큰 발전의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그 발전의 규모를 더욱 키우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술력과 자원, 경험들을 십분 발휘하여 소프트웨어 개발, 즉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영화산업을 주도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