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010년 8월이면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의한 조선강제병합이 이루어진 지 100년이 된다.
일본의 강제병합과 점령에 의해 시작된 한국 현대사에서 100년은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독재를 경험하고 또 민주화를 성취하면서 지나온 시대이다. 그러나 그 여파와 후유증은 아직도 우리의 현실로 이어져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한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 낸 경제발전은 우리에게 무한 경쟁을 요구하고 있고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유난히도 그 빛을 발하는 촛불들과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에서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식도 있다. 또한 세계와 맞장뜨는 북한의 핵 위협은 강도를 높여가고 남북대치 국면은 점점 긴장감을 더해 간다.
또한 대외적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 시도 등 불안한 요소가 상존하는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 우리는 속해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 각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파괴해온 자연환경과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원자재를 흡수하는 중국을 비롯한 개발국가의 천연자원 남용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한 수준에서 위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21세기 인류의 생존을 우려할 정도가 되고 있어 생태적 평화를 절실하게 추구해야할 시점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국익의 충돌로 이어지는 국가 중심적 질서와 이윤추구를 앞세우는 경제적 질서와는 다른 상생과 평화를 지향하는 시민사회적 국제질서를 모색하고 실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고 지역에서 지구평화를 상상해 본다.
첫째는 나 자신의 평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면 일상생활을 평화롭게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이기심을 극복하고 분노를 조절한다는 것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수행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일상에서 평화롭게 마음을 다스리고 가정에서 평화, 친지와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관용을 익히고 체득해야 한다. ‘지구에서 평화는 가정에서 출발한다’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성인권단체의 슬로건은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평화만들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둘째는 지역에서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일정 범위의 지역에서 생활한다. 직장이나, 집 또는 사회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 또는 일터에서의 평화를 생각한다. 갈등이 많은 지역에서 사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지나친 경쟁에 내몰리는 것도 평화를 위협한다.
협력보다 경쟁을 강요당하는 무한경쟁을 요구받는 현실은 모두에게 힘겹고 어려운 일이다. 돈과 권력이 아닌 우애와 평화가 실현되는 세계를 위한 작은 출발이 지역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지역에서 실천과제를 찾아야 한다.
지역 생산물을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생활협동조합, 개인의 조화로운 삶을 위한 평화학교 등 뿌리로부터 시작되는 평화운동은 지역을 넘어 국가 차원으로 경계를 넘어 세계로 네트워크 되어 가야 한다. 그것은 환경위기, 빈부격차의 확대에 대응하여 1992년 리우회의에서의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슬로건에 따라 이미 시작된 바 있기도 하다
셋째는 국가적 차원에서 평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적 지배는 민주주의를 정체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의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고 위협한다. 넷째는 지구적 차원에서 평화증대를 위해 노력하자.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인권과 인류애에 기초한 시민사회적 질서가 확대되어야 한다. 민간 차원의 자율적이고 다양한 평화운동이 활성화되고 네트워크 되는 것이 필요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평화를 위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지역 간 교류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서로의 활동과 삶을 더 풍요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희망이 된다.
무기를 줄이지 않은 채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민주주의 없이, 인권 존중 없이 평화는 없으며, 불평등을 없애지 않은 채, 부의 균형 없이, 환경에 대한 관심 없이 평화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평화를 위한 모색은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이자벨 부르니에·마르크 포티에, 홍세화역, ‘우리는 평화를 배운다’ 중에서)는 이 구절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평화는 선택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