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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마지막 한장의 달력 앞에서

상처, 치명적 정신질환 예고
용기있게 말하고 털어내야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저물고 있다. 묵은해, 새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을 그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매듭을 짓는 시간, 마지막 한 장을 남겨 둔 달력 앞에 서면 주마등처럼 한 해의 단상들이 떠오르고 숙연해진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주변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얼마나 도움이 되고 뾰족한 나의 성격을 얼마쯤이나 갈고 닦았는가? 성숙을 향하여 얼마나 전진하였는가? 원과 원이 만나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동심원을 만들며 부분집합이나 진부분집합 등을 만든다. 그러나 뾰족한 것은 만나면 서로를 찌르고 상처를 내곤 한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원리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긋나며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사람들에겐 콤플렉스로 작용한다. 콤플렉스가 심화될 경우 치명적 정신질환이 오기도 한다.

환자 A씨는 어린 시절 부친의 주사가 심해, 부친이 술을 마신 날이면 부친의 폭행을 피해 밤새 잠도 못자고 엄마와 함께 도망다니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부친은 노름으로 돈을 잃고 바람까지 피워 부친에 대한 강한 분노감과 적개심은 A씨의 가슴에 각인되었고, 그 결과 A씨는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때려 학교에서 퇴학을 맞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고발당하는 등 부모님 속을 무척 썩였다. 한번은 술에 취해 부친을 구타하고 자신의 방에 불을 질러 자살을 시도하여 이로 인해 존속폭행 및 방화로 형을 살기도 하였다.

환자 B씨는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가족의 따듯한 보살핌은 물론 주목받지 못하며 성장하였다. 결혼 후 B씨는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는 한편, 남편은 직장 일로 바빠 늘상 귀가 시간이 늦었다. B씨는 아이를 재우고 난 뒤 홀로 방에 앉아 어릴 때 엄마가 일 나가고 없어 외롭게 빈방에서 홀로 지냈던 순간들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의 휴대전화기가 밤늦게 울려와 이상하게 여긴 B씨는 남편의 휴대전화기를 열어보고 경악하였다. 여자들의 이름이 수없이 입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남편의 귀가시간이 늦는 이유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급기야 남편의 휴대전화에 이름이 입력된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하였다. B씨의 하루 일과는 남편의 휴대전화 뒤지기로 시작하여 남편의 회사로 전화하여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남들에게는 무슨 일이든 친절하게 대하면서 왜 나에게는 함부로 대하느냐, 내가 그렇게 하찮은 사람이냐며 사사건건 따지며 밤새도록 시비를 걸어 남편이 잠을 못 들게 했다. B씨는 자신을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지 않는 것이 콤플랙스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상처를 받고 그것을 털어버리지 못한 상태로 놓아두면 정리되지 못한 채 무의식의 창고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이 축적된 상처가 무의식 속에서 마그마처럼 꿈틀거리다가, 자아가 약해지거나 방어가 깨지는 시점에서 갑자기 튀어 나올 수 있다.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사고들은, 어린 시절 성장과정 중에 받았던 상처가 정리되지 못한 채 축적되어 있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힘든 상황이 오면, 엉뚱한 곳으로 적개심이 폭발한 경우가 많다. 무의식은 언제 어떤 형태로 분출될 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좋지 못한 기억은 선뜻선뜻 떠나보내기를 기대해 본다. 마음 속 불편한 일들은 이웃이나 친구에게 털어놓고 함께 고민해 보는 나누는 삶을 살도록 권유하고 싶다. 말로 표현하면 상처가 많이 완화되고 시원해진다. 말로 표현하는 동안 마음을 수습할 수 있는 생각의 실마리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있게 자신의 열등감을 털어 놓았을 때에 자기를 옥죄이는 콤플랙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우리들은 과거의 상처에 발목 잡혀 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 깊이 빠져 현재를 놓치고 있을 수 있다. 리얼리티 테스팅(Reality Testing).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나를 늘 점검하여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명징하게 깨어서 잘 살아야 한다.

틱낫한 스님은 어떤 사람이건 진실로 이해하면 미워할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 앞에서, 내가 얼마나 마음 속 상처를 털어버리며 살아왔는지, 사람들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하였는지, 얼마나 성숙해지려고 노력했는지 점검해 보자고 권유하고 싶다. 새해에는 열등감과 콤플랙스를 내려놓고 여유와 편안함을 즐길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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