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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생각하며

불신감정 하루빨리 없애야
평화적 공존 자리잡길 희망

 

독재정권이 끝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1990년대쯤부터 우리가 각종 언론매체에서 거의 매일처럼 마주치는 용어가 ‘보수’와 ‘진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용어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의 관계처럼,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관계처럼, 독일의 기민당과 사민당의 관계처럼 상호 경쟁적이며 보완적인 정치집단을 가리키는 가치중립적 용어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에드먼드 버크가 지적한 것처럼 목표의 차이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와 방법에 대한 차이에 있는 것이지만, 그래서 서로 경쟁하며 보완하는 정치적 입장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두 용어는 불행하게도 그렇게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는 현재 서로가 상대를 용납하지 못하는 감정적 용어로 마구 사용되고 있다. 상대를 박멸해야할 해충처럼 인식하며 부정하는 용어로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태도를 드러내주는 말은 이를테면 상대를 ‘하수구처럼 꽉 막힌 보수’라 지칭하거나 ‘김정일 정권의 2중대’로 지칭하는, 상대적으로 다소 점잖은 표현으로부터 노골적으로 멸시와 비하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수구 꼴통’이나 ‘좌파 빨갱이’라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렇다면 상대가 가진 정치적 태도에 대한 이같은 부정적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그 연원은 일차적으로는 우리나라가 걸어온 순탄치 못한 근대사에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자본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당시 진보라고 지칭되던 마르크시즘을 탄압하고 부정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민족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 남과 북이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져서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가진 일천한 민주주의의 역사, 상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는 데 충분하지 못한 시간에 그 이유가 있다. 우리는 1980년대 말에 권위주의 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그 이후 사회 각분야에서 분출된 과거부정과 민주화의 욕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하고 제어하는 데에는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집단들이 노사문제, 남북통일문제, 한미의 동맹문제, 정당의 이념문제, 교육문제 등에서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결집시키는 데에는 일정한 갈등의 기간이 필요한 법인데 우리는 그 일정한 기간을 아직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선진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서구의 여러국가들도 일찍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부정적 대립과 갈등보다 더 격심한 대립과 갈등을 겪었었다. 이 사실은 빠리 꼼뮌과 스페인 내전같은 예를 상기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점에서는 우리가 짧은 시간에 이룩한 이 정도의 민주주의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그렇지만 그 자부심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는 자만심이 아니라 우리보다 선진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이류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류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한국의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상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의 감정을 하루빨리 제거하기를 바란다. 과거에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고, 탄압하는 역사에서 축적된 감정적 원한을 뛰어넘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태도를 익혀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정권의 교체를 상대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정권을 잡았을 때보다 국민을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보이는 기회로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적인 자리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어법을 체질화 해주기를 바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정체성을 의심하면서 상대의 속을 뒤집어 놓는 부정적 언사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한 보수와 진보 사이에 평화가 깃들 수 없는 까닭이다.

정치인들이 먼저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일정한 의문을 제기하는 어법을 체질화해야 국민이 따라 갈 수 있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말이 부정적 갈등의 대표적 용어가 아니라 평화적 공존의 대표적 용어로 자리잡기를 필자는 강력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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