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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화가 생각난다. ‘군에 입대한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는 그 아들에게 밥 한끼 해 줄 쌀이 없다. 어머니는 40여 년을 고이 길러온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쌀을 사온다. 흰 쌀밥이 차려진 밥상을 받은 아들은 어머니가 수건을 벗지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수건을 벗겨보는데…’ 1965년 개봉한 영화 ‘삭발의 모정’이다. 황정순과 김운하가 모자(母子)로 출연해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비슷한 이야기로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청구야담(靑邱野談)과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해서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본다. 삭발은 세속에서 벗어나 구도의 대열에 들어선 출가자 정신의 상징이고, 청정수행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법정 스님은 대학 3학년 때 출가를 결심한다. “홀어머니의 외아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무명초 같은 머리카락을 벗겨내니 먹장구름이 벗겨지듯 세상을 환히 보게 됐다”던 스님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법정 스님의 의자’의 내레이터를 맡은 배우 최불암 또한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자랐던 번민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밤마다 이불에 머리를 파묻으며 잠을 청해 보지만 의식은 더 또렷해지고, 고통스러운 존재의 무게에 번민과 집착으로 지새우던 시절이었다. 그는 만일 그때 자신도 법정 스님처럼 머리카락을 잘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말로 법정 스님과의 인연(因緣)을 소개했다.

운동선수들은 경기력이 떨어져 연패(連敗)의 늪에 빠질 때 심기일전(心機一轉) 하자는 뜻에서 삭발을 한다. 말하자면 ‘삭발투혼’인 셈인데, 삭발은 이처럼 잡념을 떨쳐내고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해주는 효과가 있다. 또 삭발은 무언(無言)의 항의 표시이기도 하다.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의 저지나, 관철을 위해 삭발하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지난달 28일 여주군 대신면 당산리에서 1만여명의 여주군민이 참가한 가운데 여주 공군사격장 이전 촉구와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여주군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춘석 여주군수와 이범관 여주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해 시의원, 이장단 등 참석인사들이 단체로 삭발식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여주군민(10만 9천명)의 10%로가 참가한 대규모 집회였던 만큼 지역 유지들의 단체 삭발은 불가피 했을 것이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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