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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나의스승] <14> 윤면식 한국은행 경기본부장

선생님, 건강하세요

공자께서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 하셨듯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다 나의 스승일진대 하물며 교단에서 직접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은 어느 한 분도 잊어서는 아니 될 귀한 은사들 아니겠는가? 굳이 한 분을 ‘잊지 못할 나의 스승’으로 택하는 것이 제자 입장에서 불경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분은 중학교 때 국어를 가르치셨던 김진규 선생님이시다.

나는 1972년 동인천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빡빡머리에 검은 교복과 교모를 착용하고 선생님은 물론 상급생에게도 거수경례를 붙이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나에게 모든 선생님들은 엄한 훈육주임 선생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김 선생님은 당시 교편을 잡으신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분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큰 형님 같은 친근감이 느껴졌고 수업에 있어서도 혁신적인 방식을 많이 도입하셨다.

예를 들면 학생들로 하여금 수업의 일정 부분을 직접 가르치도록 하는 과제를 부과하셨다. 교단에 서서 선생님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부분을 충분히 예습하여야 했다. 또한 가르칠 거리를 궁리하는 과정에서 종전에 선생님께 배운 내용도 복습하여야 했다. 선생님께서는 학생처럼 질문하고 답변이 시원치 않으면 직접 답변하시며 수업내용을 보충하셨다. 이러한 수업방식은 나중에 대학원에서야 볼 수 있었던 세미나 과목과 같은 것이었으니 얼마나 앞선 것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과제는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을 인터뷰하고 그 분의 프로필을 기사화하여 제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선생님을 인터뷰할까 고민하다가 김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자 매우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작문시간에는 학생들이 제출한 시나 수필 중에서 신춘문예 심사하듯 당선작을 뽑아 평을 해주시고 학생들에게 작가 1호, 작가 2호 등의 칭호를 붙여 주셨다. 그리고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외워 낭송하게 하시고 모든 시를 외우면 국어 성적에 가산점을 주기도 하셨다. 실로 다양한 교수법을 적용하셨다. 이러한 방식이 지금은 흔할 수도 있겠지만 한 학급 학생수가 65명이나 되고 권위주의적 교육이 보편적이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학생들의 흥미와 참여를 이끌어 낸 선구적인 방식이었다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김 선생님이 중학교 3년 동안 한 번도 담임이신 적이 없었는데 내가 여러 차례 같이 배구한 기억이 난다는 점에서 수업시간 외에도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셨던 교육자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신 김 선생님께서 앞으로도 늘 건강하시고 오랫동안 후학 양성의 즐거움을 가지시기를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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