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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마음을 비우며 산다는 것

 

한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이 있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바로 성경 마태복음에도 나오는 ‘가난한 마음’이다. 이를 제목으로 한 노랫말도 있었다. ‘가난한 마음속에 행복이 있다고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어요…’ 도대체 왜? 마음이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야 행복하다고 한 걸까. 그러나 그 때는 몰랐다.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오랜 친구가 있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별별 일들을 다 겪었다. 아리랑치기를 당하지 않나, 추운 겨울 벤치에 쓰러져 잠 들었다 동사(凍死)할 뻔 하지를 않나, 악재가 잇따르자 친구의 아내가 마침내 ‘내 남편 구하기’를 선언했다. 술을 마시면 장소를 귀신같이 알아내곤 찾아와 싣고 갔다. “당신들이 친구냐”며 독설도 퍼부었다. 그래도 친구는 단 한 번도 금주를 선언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친구들은 친구의 아내로부터, 친구의 아내는 친구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친구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멋쩍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친구는 아내에게 서투르나마 문자로 애정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 시간만은 왠지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친구와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친구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저희 남편과 술 마셨지요?” 순간 나는 뜨끔했다. ‘또 일이 터졌구나’ 별별 생각이 밀려 왔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 자신이 마음을 수련하는 곳으로 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친구 혼자서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혼자가기를 쑥스러워 하니 동행해주면 좋겠다며 저간의 사정도 들려줬다. 나는 곧바로 친구를 찾아갔다.

그날로 찾아간 곳은 전부터 막연히 들어서 대충은 알 만한 곳이었다. 단계별로 진행되는 수련의 첫 단계는 마음을 비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기억 속에 저장된 모든 것들을 버리는 일이었다. 친구와 나는 참선을 하듯 눈을 감고 수련의 첫 과정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수련이 끝나면 친구의 아내와 함께 어울려 술도 마셨다.

친구의 아내는 행복하다고 했다. 한 때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리고 남편 친구들에게 모질던 얼굴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함은 ‘참되게 자신을 비우면 오묘한 일들이 일어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마음을 비워내면 신기하게도 기적같은 일들이 잇따른다는 것이다. 우리 의식의 표면은 시도 때도 없이 피어오르는 생각들로 늘 뒤덮여 있다. 잡념이요, 망상이다. 이는 대부분 ‘나’와 관련된 것들로 조용히 바라보면 저절로 사라지면서 아무 생각도 없는 텅 빈 무한한 공간인 ‘무(無)’를 드러낸다.

마음수련은 이런 것이다. 진공묘유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 예수가 말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도 마음을 완전히 비우면 실제로 천국이 보인다는 뜻이고, 수천 년 전 인도 힌두교 요가학파의 창시자인 파탄잘리도 ‘마음속의 잔물결을 잠재우면 모든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 욕심을 버렸다는 말을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인가. 그러니 마음을 비웠다는 소리가 오히려 ‘나는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소’하는 역설적인 말로도 들린다. 실제로 마음을 비웠다는 사람들치고 온전하게 자신을 낮추는 경우는 거의 보질 못했다. 진정 자신을 비울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참 맛을 아는 사람이다. 혼자서도 잘 하는 사람이다. 핑계가 없는 사람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데 그것도 인생이라고 아옹다옹 진흙탕 싸움을 일삼는 자들은 누구인가. 우주라는 영역에서 바라보면 다만 한 점인 지구위의 삶인데 그걸 왜 모르는가.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