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 후보자 등록이 22일 시작됐지만 야권연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여론조사 조작’ 논란으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성사시킨 야권연대가 시너지 효과는커녕 악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 달 전만 해도 한명숙 대표는 “과반수를 얻고 제1당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천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의 잇따른 실수가 더 두드러지면서 새누리당이 초반 열세를 만회한 듯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후보단일화 경선 여론조사 조작파문이 불거지면서 야권 전체가 최악의 위기국면을 맞게 됐다.
이정희 공동대표 측은 서울 관악을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나이를 속여 응답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당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는 심각한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이 공동대표는 경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에게 재경선을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이를 거부하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문제는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다른 경선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야권 연대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새롭고 깨끗한 정치를 표방한 진보정당이 기존 낡은 정치의 구태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볼 수 있다. 도덕성과 정직성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진보정당으로선 이미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이 공동대표는 “재경선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라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이 공동대표는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돈 봉투 살포 사건 당시 실무자가 아닌 몸통과 머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더니 정작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실무자 실수로 빚어진 일이니 재경선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 공동대표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야권연대의 선거승패는 물론 진보세력의 명운이 달렸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정당 사상 최초의 40대 여성대표로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를 향한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통 큰 결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고 버티는 것은 야권 연대의 판을 깨고 공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물쩍 봉합할 경우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 어느 때보다 좋았던 총선 분위기였는데 야당들이 스스로 망쳤다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양당 지도부의 현명한 처신과 지혜로운 해법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