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7일 토요일, 한가로운 주말의 아침 향기를 만끽하며 유유자적하게 TV를 켜는 순간, 나는 얼어붙지 않을 수 없었다.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비추는 화면을 배경으로 ‘천안함 침몰’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 사건은 이미 내가 세상 모르고 쿨쿨 자고 있던 전날인 3월 26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 3월인데도 나에게는 굉장히 춥기만 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차가운 물속에서 얼마나 춥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하루종일 TV를 끄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때론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 채 울컥 치미는 분노를 삭이며 어쩌면 내 동생이 됐을지도 모를 소중한 아이들이 구조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장면이 떠오른다.
사건 발생 당시, 우리 국민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고 전 국토는 아픈 상실감과 뜨거운 눈물로 얼룩졌다. 그러나 사고의 생채기가 채 아물기도 전에 우리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조사 과정과 결과를 두고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이른바, 국론 분열이라는 현실에 놓이게 됐다. 북한의 소행이네 아니네, 인터넷 상에선 갖가지 ‘썰’들이 난무했고, 사람들의 입과 입을 거쳐 어느 새 그럴듯한 설득력을 갖게 된 음모론은 46인 해군 청년들의 유족들을 또다시 상처 입혔다. 짙어져가는 사회 갈등 속에서 잠시나마 그 중요성이 대두됐던 안보의식은 점차 그 목소리가 작아져만 갔고, 이러한 비극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우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은 11월 23일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감행해 군과 민간인이 다시금 희생되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천안함 피격이 2년 전에 발생한 것을 아는 국민이 설문 집단의 반도 되지 않는 43%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의 인생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흩어져야했던 46인의 꽃같은 목숨들을 우리는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 것이다. 난 비록 허구이지만 현실세계를 투영하는 매체인 영화를 즐겨보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국가가 위난에 처해 있을 때 그 국민이 자신의 안녕을 기꺼이 포기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는 작은 하나이지만 내가 내 손으로 내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에서 과연 내 자신은 그러한가, 내 주위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가, 국민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애국심은 어떻게 키워지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타인을 향한 선의의 희생은 그 어느 것 하나 값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향한 헌신과 희생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보석과도 같은 것이며,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공헌한 이들의 고귀한 정신이 잊혀지지 않도록 후손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국가보훈은 바로 이와 같이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대의 확립에 공헌한 이들을 기리고 그들을 예우하며, 그 숭고한 정신을 알리는 데서 출발해 나아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키워내는 데 있다.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거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됐던 국가보훈과 안보정신은 시간이 흘러 사회가 평안을 되찾으면서 잠잠해지려 하고 있다. 특히 20, 30대의 젊은 세대에서 그 현상은 두드러진다고 한다. 천안함 피격 2주기를 맞아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가슴에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46청년에 대한 우리들의 보답이 아닐까.
/한연정 인천보훈지청 실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