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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정진윤"이모의 전성시대"

 

모처럼 한가한 틈에 눈을 들어 쪽빛 하늘을 담는다. 마음은 벌써 새털구름을 따라나선다. 어느 곳에도 매이지 않는 한량키 어려운 자유를 좇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름이었다.

본시 고명딸로 자란 나를 ‘이모’라고 부를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나보다 키도 훌쩍 크고 머리는 거의 금발에 가까운 빛나는 갈색머리를 날리고 하의실종이라는 핫팬츠 차림의 생전 처음 보는 아가씨로부터 듣는 호칭이라 당연히 내가 아니려니 했는데, 아예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면서 내 팔을 잡는다. 순간 당황했고 무슨 일인가 싶어 경계를 했으나 곧 마음을 풀고 그 예쁜 숙녀의 말을 기다린다.

“여기 백련사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려요?” 걸어가기는 힘들고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하며 요금이나 시간을 이야기 해줬더니 금새 얼굴만큼이나 예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나풀나풀 남자친구에게로 달려가서 그의 팔을 끼고 사라진다.

한 때 여자들끼리 뭐라고 부르기가 애매한 경우 ‘언니’라는 호칭을 쓴 적이 있었다. 잘 알고 있다시피 언니라는 호칭은 여자가 손위 자매를 부르는 말인데, 어느 시기부터 훨씬 나이가 어린 여자에게도 망설임 없이 언니로 불렀다. 길에서도 언니, 백화점에서도 언니, 음식점에서도 언니 그저 언니, 언니면 그냥 통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 변형이라고 할지 요즘은 너나 없이 그냥 이모로 통한다. 나와 그 사람의 엄마가 하다못해 의붓자매라도 되는지 따질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 이모라는 호칭이 자꾸 듣다 보니 왠지 정감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고모보다 훨씬 다정하게 들리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끔찍이 아껴주시던 고모들을 생각하면 참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솔직한 마음이다. 하기야 요즘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더 따르고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으니 그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외가는 벼르고 별러 무슨 날에나 친정 나들이 하시는 엄마를 따라 가는 곳이니 외할머니야 쓰다듬고 물고 빨고 한들 나는 낯설기도 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외사촌들과도 좀 사귈만 하면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곤 했으니 지금의 세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끔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는 친한 사람들과 하는 말이 딸 없는 여자는 마음이 한데라는 말을 한다. 다들 딸이 뭘 사다주고 아버지 칠순도 딸들이 의논해 잔치도 하고 통장에 돈도 넣어 드린다고 자랑이다.

아들이 뭐 해준다는 말은 없고 아들 얘기가 나오면 끝나기도 전에 며느리 흉으로 이어진다. 하루하루 쌀쌀해 지는 날씨에 아들 하나 낳아 키우는 내 마음은 벌써부터 한데처럼 스산한데 아쉬운 대로 이모라는 호칭에 빨리 적응해서 공짜배기 조카들이라도 많이 두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으려나...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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