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라치면 당국자들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우리 교육을 부러워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 한국의 교육을 부러워한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한 한국 교육은 정확히 말하면 ‘교육열’이지 ‘교육시스템’은 아니다.
정권마다, 또 교육부처 장관이 바뀔 때마다 첨삭된 우리 교육시스템은 지나친 손질 탓에 거의 누더기 수준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험을 통한 수험생들의 서열화다.
어제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도 마찬가지다. 1994년부터 매년 11월 둘째 주 목요일 시행되는 수능시험은 수험생을 숫자로 등급화해 장래를 재단한다. 한 차례의 수능시험이 한 인간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시험이란 수험생들의 변별력이 있어야 하고, 제기된 결점을 계속 보완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소 12년에 걸쳐 배양된 학력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불공정성은 변명할 방법이 없다. 맨손으로 나이아가라폭포 위에 매달린 외줄을 타는 듯한 긴장감 속에 치르는 시험에서 답안을 밀려 쓰는 등의 실수가 있으면 인생의 질이 달라지는 게 우리사회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 문제는 시험이라기보다 단 한 번의 시험결과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데 있다. 한 번의 시험으로 매겨진 등급은 이후 각고의 노력이나 뒤늦은 깨달음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실은 수험생들이 더 잘 안다.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부모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다.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미래 신랑(신부)의 얼굴이 바뀐다”거나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등의 급훈이 웃기지만 않은 게 뼈아픈 현실이다.
수능 하루 전인 7일 대구에서는 시험에 부담을 느낀 삼수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같은 날 경남 남해에서도 고3 수험생이 모 대학건물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또 수능이 끝났으니 결과에 낙담한 청소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다. 더 많은 청소년은 낙담과 고민 속에 절망할 것도 틀림없다.
살아온 날의 몇 배에 해당하는 자신들의 미래를 바라볼 여유가 없게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1명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효용성을 내세우기에 앞서 1명의 천재를 위해 스러져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생각할 때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