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는 ‘에베레스트산(山)’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에베레스트산의 높이인 8천884m는 단골 시험문제였고, 영국인 힐러리경(卿)은 인간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에 오른 인물로 위인전에 실렸다.
산소부족과 추위, 강풍, 함정이 도사린 눈길을 헤치고 세계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방망이질했다.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새롭게 열린 지평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故) 고상돈 대원이 1977년 9월 15일 등정에 성공해 ‘세계에서 14번째’라는 기록을 남겼다. 고상돈 대원이 국민들의 열광적 환영을 받으며 카퍼레이드까지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어 허영호 대장이 히말라야 높은 봉우리를 차례로 정복한 데 이어 엄홍길 대장은 8천m급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완전 정복하는 쾌거를 남겼다. 이후 여성 대원들로 구성된 등정대가 오르는가 하면, 대학OB팀, 고교동문팀 등이 잇따라 등정에 성공해 이제는 에베레스트산 등정소식이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세계적으로도 70대 노령의 여성이 계속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올라 기네스북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이제는 세계 최고봉 등정소식은 친근감마저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에베레스트산 등정이 평범해진 이유로 장비와 의학의 발전, 그리고 세밀한 기상관측 등을 꼽았다. 과거 고산(高山)으로 오르는 산악인들을 괴롭히던 산소부족은 각종 장비와 의약품으로 정복됐다. 여기에 가볍고 따뜻한 전문의류와 각종 지원품은 생사를 넘나들던 과거의 등정기를 추억으로 만들었다. 또 GPS 등을 포함한 기상장비는 등정시기를 정확히 산출해 야성의 자연에 도사린 위험을 제거하고 있다. 아직도 사망사건이 빈번한 에베레스트산은 위험한 산이 분명하지만 등정이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근착 외신에 따르면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관광티켓이 인기라고 한다. 미화로 3만5천 달러만 지불하면 등정능력이 없어도 세계 최고봉에 오르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100여개 관련업체가 성업 중인데 경쟁에 따라 1인당 1만 달러까지 세일도 가능하다고 하니 세태를 엿볼 수 있다. 심지어 “걸을 수만 있으면 세계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유행이란다.
등산이 인기 레포츠로 자리 잡는데 불만이 없다. 또 고산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의 도전에도 재를 뿌릴 마음은 없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물든 인간의 정복욕이 인류의 소중한 꿈 하나를 빼앗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