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진명이 1993년에 발표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우리나라도 핵무기개발에 나섰다는 소설의 배경부터 그렇다. 소설 속 주인공인 ‘이용후 박사’는 핵무기 개발 중 강대국의 첩보작전으로 사망하는데,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모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나 이휘소 박사의 가족들은 ‘허구(fiction)’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왜 허구인 소설이 300만부가 팔리는 대박을 터트렸을까?
1993년은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의 탈퇴를 위협하면서 북핵문제가 처음으로 현실감 있게 다가온 해이다. “아! 잘못하면 끔찍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조성됐다. 여기에 일본의 군사무장이 기름을 부었다.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수개월 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미확인 외신보도는 국민감정을 자극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 재미 물리학자가 핵무기 개발을 완성시키는 단계에서 살해됐다는 소설은 타이밍이 절묘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허구일지 몰라도 우리나라가 핵무기개발을 시도했음은 사실이다. 1970년 미국 국무장관 로저스가 ‘주한 미군 2만명 철수’를 언급하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정부는 핵개발을 추진했다. 핵무기 개발의 전 단계인 고폭실험을 프랑스에서 끝내고 충북 괴산의 우라늄광산 개발을 시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 핵무기개발은 무산됐고, 여전히 미국의 ‘핵우산’이라는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런데 2000년, 우리나라가 우라늄 레이저 농축법 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2004년 밝혀져 흥미를 끌었다. 농축시설도 러시아제로 알려진 것과 달리 순수 우리 기술이라는 언론보도다.
우리나라가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순항미사일을 보유한 5개국 중 하나며, 핵탄두 발사가 가능한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는 부각되지 않고 있으나 사실이다. 또 미국의 반대만 없다면 한국의 핵무기개발은 수년의 짧은 시간 내 가능하다는 게 국제사회의 공인된 여론이기도 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다고 우리도 가져야 한다는 감정적이거나 매파적 시각이 아니다. 공갈이 현실화된 시점에서 어떤 것이 국민과 국익을 보호하는 길인지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