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이라고는 해도 비교적 한적하던 동네가 며칠 새 북적거리고 있다. 이름도 모르는 온갖 모종이 연둣빛으로 덮인다. 이른 아침이면 차에서 새로운 모판을 내리고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모판으로 바뀐다. 상추, 토마토, 오이, 호박, 고추, 땅콩, 옥수수, 종류도 모르는 싹들이 모판에 칸칸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들을 데려갈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보이는 사람도 있고, 외지에 나가 살던 자식들의 차를 타고 오시는 어르신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나온 어린 꼬마들도 보인다. 올해는 어린이날이 주말이라 놀이공원이나 그밖에 아이들을 위한 곳을 찾아 즐거운 일정을 보내기도 하지만 부모님을 찾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며칠 뒤에 오는 어버이날은 평일이고 주중에 있어 멀리 사는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무리가 따르게 된다. 부모님께는 선물이나 용돈도 좋지만 자녀들의 잘사는 모습이 가장 큰 선물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보여드린다면 그 어떤 선물과 비교를 할 수 있을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한 대를 넘어 손자손녀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눈은 언제나 사랑으로 넘친다.
어버이날을 지낸 첫 주말에 외지에서 온 차량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다. 모두들 신기한 눈으로 들여다보다 마음에 드는 모판을 골라 차에 싣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모종을 한두 개씩 손에 들어 나르기도 하는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그 얼굴엔 하나 같이 웃음이 넘친다. 그 무리 속에서 한 할머니가 모종보다 더 여린 손녀의 손에 이끌려 모종을 하나씩 골라 들고 오신다.
곁에 있던 아들 내외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딸을 만류하게 되고 엄마에게 떼를 써보기도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결국 제일 마음 약한 할아버지를 조르고 못이기는 할아버지의 두 손에 새로운 모종이 들려 있다. 텃밭에 아이 이름과 사진을 붙인 팻말을 세워주고 모종 잘 키우기로 약속을 하며 손가락을 걸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연신 뽀뽀를 하며 헤어진다. 차 막힌다고 어서 가라며 손짓하는 할머니는 어느새 손녀딸을 다시 안아보고 싶다고 하며 웃으신다.
오월에 잊지 말아야 하는 날이 이 두 번으로 끝날 리 만무하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스승의 날도 있다.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은사님을 떠올리며 비록 마음뿐이라고는 해도 그 뜻을 다시 한 번 새기게 한다. 그 외에도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있고, 상술이라고는 하지만 연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로즈데이도 있고 보면 오월은 숨 가쁜 계절이다.
좀 엉뚱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모든 날을 한 데 모아서 축복의 날로 정해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은혜를 입은 분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정을 나누면 어떨까 싶다. 각박한 시대에도 선한 사람들은 그 나름의 효도를 찾아서 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사랑이 있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나는 오월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