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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팜티호아 할머니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팜티호아.

기억은 비를 타고 1968년 베트남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해 2월 22일 한국군은 꽝남성 하미마을에 살던 주민 137명을 학살한다. 팜티호아 할머니는 당시 다섯 명의 가족을 잃고 자신도 수류탄에 두 발목이 잘린다. 가슴에 꼭 품고 있던 열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은 총탄에, 그리고 임신중인 조카 며느리는 한국군에게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일을 당하고 결국 죽임 당한다.

가족을 불귀(不歸)의 객(客)으로 떠나 보낸 뒤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살았던 할머니. 아름다웠던 삶을 지옥으로 바꾼 그 군인들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손을 언제나 따뜻하게 잡았다.

지난 3월 열린 하미마을 학살 45주기 위령제에 처음으로 한국 사람이 참가했다. 할머니는 그들에게도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사죄하는 젊은 마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 죄도 없는 너희들이 뭐하자고 여기까지 왔어. 이 불쌍한 것들이 어째….”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넘는 성숙한 인격체, 그 자체다.

“다시는 전쟁 같은 건 없어야지, 나 같은 사람 없어야지….” 할머니의 마지막 당부다.

베트남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 죄송한 마음이 모여 비가 됐다. ‘베트남과 한국을 생각하는 시민 모임’ 등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할머니의 장례를 돕고 있다. 오늘이 발인이다.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를 용서해버린, 우리의 옹졸함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삶을 살아 온 팜티호아 할머니. 그 영전에 석고대죄(席藁待罪) 한다.

일본제국주의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또 그렇게 믿고 싶지만, 우리도 역사 속에 가해자였던 세월이 있었다. ‘나 잘살아 보자고 다른 사람을 죽였던’ 시절. 우리는 얼마나 반성했던가, 팜티호아 할머니의 죽음이 던지는 준엄한 화두(話頭)다.

베트남 민족 시인 반레(Van Le)는 ‘합리화와 반성’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만약 모든 사람이 죽고도 그 누군가 살아남는다면 그것 또한 죄악입니다. 그런 삶은 너무도 무겁고 너무도 고독하며 너무도 불공평합니다. 그것이 내가 전쟁으로부터 깨달은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한민족(韓民族),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최정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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