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64년 동경올림픽 때였다. 일본은 여기서 세계최강 소련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조직력과 강력한 수비를 펼친 선수들에게는 ‘동양의 마녀’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세계정상에 군림했다.
한국여자배구는 1975년 몬트리올 프레올림픽에서 이런 일본을 꺾고 우승, 세계 배구계를 놀라게 하며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다. 여세를 몰아 다음해에 열린 몬트리올 올림픽에선 당당히 동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배구팀이 딴 동메달은 올림픽 출전 사상 첫 단체 구기 종목 메달이다. 당시 메달획득의 의미는 배구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했다.
‘날으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 동메달의 주역 조혜정 선수의 애칭이다. 165cm의 단신이지만 60cm에 달하는 서전트 점프력으로 당시 동양의 마녀들과 자신보다 10cm 이상 큰 외국선수들을 상대로 종횡무진 코트를 누빈 조혜정을 보고 외국기자가 감탄에 젖어 붙여준 이름이다. 50대 후반의 주부가 된 조혜정은 지금도 배구계의 전설, 살아있는 역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올림픽이 끝난 후 우리나라는 대대적 배구 붐이 일어났다. 초중고를 비롯 실업 등 전국 규모의 대회도 수십개가 생겨날 정도였다. 장충체육관은 그 열기의 중심이기도 했다.
안산시는 주부들의 배구사랑이 남다른 곳이다. 어머니배구팀이 25개나 되며 다문화 배구팀까지 갖춰져 있다. 이들이 모여 10년 넘게 매년 국내 최대 규모의 배구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그래서 안산은 전국에서 어머니 배구단의 열정과 활동이 가장 왕성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배구를 생업으로 삼은 프로선수들조차 놀랄 정도다. 실력도 출중해 코트에만 서면 훨훨 날며 전국대회를 휩쓸고 다닌다.
시민들의 배구 열기 또한 뜨겁다. 지난 일요일(21일)에는 ‘2013 안산·우리카드컵 프로배구 대회’가 열리는 상록수체육관 전 좌석이 매진되는 기록도 세웠다. 많은 팬들이 표를 구하지 못해 발걸음을 돌렸다. 기존 구단들이 있는 몇몇 연고지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으로. 스포츠계에서는 프로 구단 하나 없는 ‘안산의 반란’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머니배구단과 시민들의 배구사랑. 안산시를 배구의 메카로 만드는 동력 중 동력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