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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슴 아픈 ‘아리랑’

 

남북한과 해외동포들이 모이면 누구나 부담 없이 부르는 민요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남북을 통틀어 60여종 3천600여수에 이른다. 가히 한국인의 정서를 아우르는 문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진보적인 학자·학생들이 즐겨 읽은 책도 ‘아리랑’이니, 미국의 여류작가 님 웨일스가 1941년에 ‘the Song of Arira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논픽션이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은 중국 전역을 누비며 항일 독립 운동에 헌신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일본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1936년 조선민족해방동맹이라는 독자적인 단체를 만들어 항일투쟁을 벌였다. 이때 님 웨일즈를 만났고, 그가 전한 자신의 삶과 우리 민족의 아픈 기록이 ‘아리랑’이다. 곧 조국에 대한 독립의 열망을 아리랑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아리랑이 대규모로 웅장하게, 그러나 가슴 아프게 나타났으니, 북한의 ‘아리랑’ 공연이다. 연인원 10만명이 출연하는 매스게임의 일종인 ‘대(大)집단체조’이다. 북한은 이 공연에 대해 “조선의 정서와 넋이 담긴 민요 아리랑을 주제로 민족의 운명사와 세태풍속을 서사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말한다. 아리랑은 2002년 처음 창작되어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90여회 공연돼 400만명이 관람한 이래 2006년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11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올해는 9월 말까지 공연한다고 한다. 아리랑은 집단공연으로 세계 최대의 인원이 참가하기에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아리랑은 서장, 본문 1~4장 및 10경, 종장으로 구성된 1시간 20분짜리 초대형 야외공연 작품이다. 아리랑 독창으로 시작되는 서장에 이어 본문 1장에서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안고 조국을 등지는 이별 장면, 청년 공산주의자들의 율동장면 등이 연출되고, ‘선군 아리랑’을 주제로 한 본문 2장은 험한 눈보라를 헤쳐 나가는 모습의 율동과 함께 ‘자주’, ‘주체’라는 문구가 새겨지기도 하는 등 체제 선전 내용이 대부분이다.

아리랑은 당초 김일성 주석을 상징하는 ‘첫 태양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창작됐으나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아리랑’으로 바뀌면서 전체 줄거리도 정치적 색채를 다소 빼는 대신 민요 아리랑으로 상징되는 민족정서를 가미시켰다.

곧 아리랑 공연은 체제의 현실이 응축된 복잡한 연출이다. 공연에는 부자세습 찬양, 해외관람객 유치를 통한 외화벌이, 북한 주민에 대한 주체사상 훈육이라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목적이 얽혀 있다. 2002년 4월 김 주석의 9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아리랑 공연은 김 주석이 1994년 사망한 뒤 고난을 극복하고 선군정치를 내세운 김 위원장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부자 세습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990년대의 극심한 경제난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해 체제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올해는 국제사회의 친선 확대를 형상화한 카드섹션과 공연 출연자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들고 집단체조를 하는 새로운 군무(群舞)도 추가되었다.

공연을 위해 학생들은 6개월여의 혹독한 연습을 견뎌야 하고, 공연 기간 중에는 오전 수업만 하고는 오후 내내 경기장에서 리허설을 해야 한다. 장기간 계속되는 고된 연습과 공연으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내리쬐는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다 보니 영양실조에 걸리는 학생들도 많다. 어느 교수의 언급대로 아리랑 공연은 ‘정치적 환각제’에 다름 아니다.

서서히 균형적인 역사인식을 찾아가는 중국의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이 7월 27일, 북한이 말하는 전승절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여 ‘아리랑’을 관람하였으니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백성들은 여기저기에서 굶어 죽는데 아리랑이라는 민족의 신성한 이름을 왜곡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아무리 풀어도 정답이 나오지 않는 방정식과 같은 북한의 저 현실을 어찌 해야 좋을까. 핵과 미사일로 얼마쯤 버틸 것인가.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코미디는 언제 멈출지 가슴이 저미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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