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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압록강 가의 북한 병사

 

1780년 청나라 6대 건륭황제 만수절(7순)의 축하사절로 꼽사리(?)끼어 다녀온 박지원의 기행집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도강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처음 본 압록강에 압도된 듯 여러 문헌을 동원하여 압록강의 유래를 설파한다. “당서(唐書)에 의하면 오리 머리처럼 푸르므로 압록강이라 한다. 황여고(皇輿考)에는 천하에 큰 강 셋이 있으니 황하, 장강(양쯔강), 압록강이다. 양산묵담(兩山墨談)에는 회수 이북의 물은 모두 황하로 흘러가므로 강의 이름을 붙인 것이 없는데, 오직 북쪽 고구려의 있는 것만은 압록강이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선조들에도 이처럼 압록강은 보통의 강이 아니었다.

압록강을 더욱 정겹게 만든 사람은 이미륵이니 그가 남긴 ‘압록강은 흐른다’ 때문이다. 그는 1899년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본명은 이의경이다. 1919년 3·1 운동에 가담했다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갔고, 거기에서 강의와 저술에 전념하다가 1950년 3월 타계하여 독일 뮌헨 교외의 그래펠핑에 묻혀있다. 1919년 이후 고향과 고국을 다시는 밟지 못하였고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 쓴 책이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제목과 달리 내용은 향수를 표현한 일종의 자서전이다.

한 TV뉴스에 압록강가 앳된 북한 병사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병사는 조선족이냐고 묻는다. 그네들에게 남조선(한국)과의 접촉은 예민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하자 20위안(한화 4천원)을 달라고 하여 주니 철조망 사이로 얼른 받는다. 이제는 시계를 보더니 이것도 달라고 한다. 지금은 줄 수 없고 다음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다. 약속한 날짜에 가서 찾았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북한에서 손목시계는 일종의 부의 상징이라 하니 무슨 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군사복무는 10년이다. 18세쯤 군에 들어가 28세가 돼야 제대를 하여 일반인이 되니 북한은 알토란같은 청춘을 문자 그대로 썩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전은 사람이 아닌 무기가 한다. 군인수와 국방력은 일치하지 않는다. 군에서 10년을 무료하게 지내게 되니 탈영이 횡행한다고 한다. 장교들은 탈영병을 찾아 집에 와서는 부모에게 행패를 부린다고 한다. 군 복무기간이 너무 길고 지루하여 고참병이 신참병에게 화풀이하는 경우가 잦아 각종 사고도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전해진다.

보급품이 부족하다 보니 민가의 물건을 절도하여 해결한다.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군인들을, 이제는 국민들이 빼앗기지 않게 감시해야 하는 사회가 북한이다. 가난한 집의 아들은 휴가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휴가는 중대장의 배려이니 돌아올 때에 양식을 싸가지고 와야 한다. 가지고 올 양식이 있을 턱이 없으니 갈 수가 없다. 온갖 부조리가 난무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군생활은 의무만큼이나 크나큰 명예이다. 혈기 왕성한 청춘 시기에 국가를 지킨다는 명예보다 더 큰 명예가 어디에 있겠는가. 북한 군인들에게 이러한 명예가 있을 리 없다.

필자는 압록강, 두만강 가에 세 번 가보았다. 병사들은 어릴 때에 영향 섭취를 제대로 못하여 왜소하다. 얼굴은 새카맣고 핏기가 없다. 저 병사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저들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있을 리 없다. 압록강 이편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건만 북한은 언제나 변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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