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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섬돌마을.

해마다 이맘때면 할아버지는 장대 끝에 그물망을 만드셨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던 어린 손주들은 그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갸우뚱거렸다. 마침내 완성. 할아버지께선 마을 뒷동산에 오르셨고, 우리들은 마냥 즐거웠다. 다다른 곳은 감나무 아래. 장대를 높이 곧추세운 그 팔뚝은 세상 모든 것을 떠안아도 흔들림 없을 것처럼 든든했다. 장대 끝 그물망을 잘 익은 감 아래 넣어 한번의 손놀림으로 툭, 감이 떨어졌다. 신기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손주들 손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감은 배급됐고, 세상은 아름다웠다. 할아버지는 그 맛있는 감을 모두 거두지 않고 남기셨다. 가지에 달려있는 감만큼 의문을 남긴 채 그렇게 유년의 추억은 감빛으로 채색됐다.

할아버지의 이상스런 행동을 어슴푸레 눈치 챈 것은 이 시를 만나고서다.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신경림 시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아,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새빨간 감’을 남겼구나, 우리 선조들은.

그래, 할아버지도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는 까치들을 긍휼(矜恤)히 여기신 게다. 어디 까치뿐이겠는가. 손주들 입에 넣어주기도 아까운 감자와 고구마와 밤을 뒷산에 눈이 쌓이면 손 비비며 올라가 뿌리고 내려오시던, 당시 이해되지 않던 행동도 그런 까닭이었구나, 알게 됐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반세기 전 할아버지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어린 손주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우둔한 손자는 그 가르침을 눈치 채지도 못하고 세상의 진리가 오직 교과서에만 있는 줄 알고 헤매었으니 그는 얼마나 답답한 가슴 두드리면서 지상(地上)을 떠났을까. 가슴에 감물 드는 나날이다.

그날 감나무 아래서 그가 남긴 건 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인류가 살아가면서 오래도록 지녀야할 가치, 나눔. 그 소중한 열매가 저 나무에 앉아 지금 우리를 긍휼히 내려다보고 있다.



/최정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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