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추위가 쏙쏙 스며든다. 머플러를 둘러 목을 따뜻하게 해도 왠지 자꾸 움츠려지는 11월 끝 무렵, 날씨가 점점 맵싸해진다. 엊그제는 겨울비가 온종일 마음을 적시더니 오늘은 바람 드는 무처럼 마음 안이 휑하다. 그러면서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문득 지난 초가을 다녀왔던 길상사가 생각난다.
지난 가을, 문학 동료가 데이트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며 길상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정보로 상냥한 가이드가 되어 나를 안내했다. 서울 성북동에 가을이 막 밀려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길상사에 들어서면 서울 중심에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어느 산 속에 든 느낌이다. 아름드리나무들과 그 사이로 굽이굽이 돌아가며 난 오솔길 사이에 있는 벽돌집들이 단칸집처럼 들어서 있다.
내력을 듣다보니 법정스님을 빼놓을 수 없지만 한 여인의 사랑이야기가 더 마음을 자극한다. 김영한이란 여인의 삶이 회한처럼 스민 곳이다. 한 시인을 지고지순하게 죽는 날까지 그리워하고 연인의 생일날엔 식사를 거르기까지 하며 그리던 사랑, 그 곳에서 그녀가 한이 서린 삶을 껍질같이 벗어놓고 간 흔적을 밟으며 애절한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연인 백석시인이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자야’라고 했던 그녀는 죽는 날까지 그 숲에서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비를 맞으며, 눈을 맞으며 백석시인을 불러냈을 것이다.
오솔길 초입 왼쪽에는 돌다리가 있고 계곡이 있고 나뭇가지에 덮여 있으며 새소리가 떠나지 않았을 자그마한 암자 같은 그녀의 처소였던 곳이 있다. 지금은 스님들의 처소가 된 집이 단아하게 길상사를 안내하듯이 묻혀있다. 돌다리 건너 한 켠에는 천억 대가 넘는 길상사를 시주한 그녀의 공덕비가 자그마하게 세워져있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길섶에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낮은 자세로 향을 풍기고 있다. 그리고 듬성듬성 들어선 작은 벽돌집들이 요정의 일부였을 터인데 지금은 각각의 작은 건물들은 설법전이나 기도원 강의실과 명상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김영한 그녀가 법정스님께 10년 동안 시주를 받아달라는 간청이 받아들여지던 날, 그 공간이 설법으로 울려 퍼지기를 바랐던 그대로다.
그 오솔길 곳곳에는 법정스님의 어록이 새겨진 팻말들이 있다. 야생화 속에 있거나 나뭇가지 걸려있거나 돌에 새겨 자연 속에 묻혀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바람을 느끼면서 그 말씀을 눈으로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음미하고 있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계곡을 따라 쭈욱 오르다보면 진영각이 있다. 이곳에 와서 함께한 동료는 이것을 보라며 ‘법정스님 유골모신 곳’이라고 쓴 곳을 가르친다.
한 사람의 정신적 세계가 우주를 바꿔놓는 변화의 과정을 길상사에서 나는 본다. 백석시인의 정신적 세계에서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평생을 가슴에 담고 살게 한 운명의 한 순간들, 그 사랑이 낳게 한 백석문학상과 그를 그리는 저서와 수많은 그리움들이 있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정신적 세계인 무소유를 읽고 감동받고서 1천억대 자산을 시주했던 자야, ‘천억이 백석의 시 한 줄 만하겠느냐,’고 했던 그녀의 정신적 세계가 지금 서울 도심에 자리 잡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즈넉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