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판으로 찍어낸 소나무들에게 삶의 원동력을 얻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겨울 북풍 속에서 푸르게 살아내는 소나무들의 꼿꼿함을 그려낸 김경배 화가 목판화전에서 눈물겨운 삶의 몸부림을 본다. 한 해의 끝에서 만난 전시회 ‘솔의 바람’은 화가의 아홉 번째 전시회다. 갖가지 형태의 소나무를 보면서 어린 시절 뒷동산이 생각나 잠시 피안의 세계에 들어본다. 김경배 화가의 소나무들은 특유의 흔들림을 담고 있어서 그림 속의 솔향이 전시공간인 인천문화예술회관을 향기롭게 한다. 팔만대장경의 판각지인 인천에서 전시는 특별한 의미가 있고 전통목판화의 현대화를 꾀하고자 채근담구를 써서 전각과 서예, 서각을 아울러서 실험적 작업도 시도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김경배 화가의 소나무들은 탄탄한 힘과 굳세게 살아내려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온몸으로 자연과 맞서느라고 다양한 굴곡을 지니고 있으며 곱게 자란 나무가 없다. 굴곡은 굴곡으로 끝나지 않고 어느 쪽으로 휘었더라도 끝내는 중심을 중앙에 두고 하늘을 향해 힘 있게 바로서고 있다. 소나무들은 조각칼에 의해서 직선이라는 날카로움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직선들은 화가의 손끝에서 휘돌아가는 칼의 춤을 연상하게 한다. 화가의 춤사위는 빈틈이 없다. 쉼 없이 찍어 내려갔을 소나무의 세포 하나하나가 입체감을 표출하면서 직선의 깊이마다 화가의 혼이 생명으로 전환된 것은 아닐까? 파랑색 매직을 이용한 스케치에 일관성 있게 칼놀림 하는 일이란 영혼의 집중이다. 나무가 꿈틀거리며 휘어질 적마다 영혼의 갈등과 되짚어 일어나려는 용틀임이 관객에게 희망과 의지를 준다. 화가의 소나무들은 날카로운 직선에 의해 탄생했으면서 소나무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졌다 일어서고 있다.
직선의 칼의 춤은 여러 가지 표현을 하고 있다. 세찬 바람에 맞서지 않으면서 중심을 잡고 있다. 어리광을 부리듯 어린 나무가 어른 나무에 기댄 시선이 직선 속에서 부드러운 빛을 띠는 것은 작가의 강인함 속에서 따스한 인간성 표출이다. 많은 칼놀림이 정교하다. 솔잎 하나하나 짚으면 콕콕 찌를 듯하고 갈기갈기 그어진 세포마다 많은 세월의 흔적이 스며있다. 화가는 그 맛을 더하기 위해 색깔을 투여해 화면의 중첩된 색조와 마티에르의 중후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hope095는 웅장하다. 숲의 가장 깊은 곳이다. 굵고 쭉쭉 뻗고 짧고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사람처럼 제각각의 개성으로 숲은 고요하게 무장되어 피톤치드를 내뿜고 있다. 그 속에서 나를 살피는 눈빛을 예감한다. 삭정이 뚝뚝 부러진 자리에 소리대신 커다란 눈망울이 숲의 이방인을 살피고 있다. 등살이 서늘하다. 소나무 그림 속의 글이 눈길을 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정지용의 시 ‘향수’를 통해 소나무의 몸놀림처럼 칼춤을 추듯 적어나가면서 어린 시절 떠나온 고향땅의 발놀림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김경배 화가는 내 작업의 원천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잠시도 그의 눈은 세상을 허투루 보지 않으며 밝은 색을 덧칠해 희망을 부여한다. 칠흑에서도 솔잎이 정교함과 꼿꼿함으로 투명하게 보인다. 한 해의 끝 무렵, 지나간 방황과 갈등이 투명한 영상처럼 솔향을 풍기며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저서: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