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은 자식들의 이름을 짓는 데도 신중함을 보였다.
성웅 이순신(李舜臣)은 중국의 최고 임금으로 꼽히는 순(舜)의 신(臣)하가 돼 조선을 태평성대로 이끌라는 부친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역시 예사롭지 않다. 부친 정운경은 아들 세명을 두었는데, 도전(道傳), 도존(道存), 도복(道復)이다. ‘도를 전파하고, 도를 지키고, 도를 회복시켜라’라는 의미겠다. 도(道)자를 돌림으로 쓴 것은 도(道)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불교에서는 도(道)를 올바름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여긴다. 맹자와 노자는 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여겼다.
유자(儒子)인 정도전의 부친은 유교 최고의 가치를 도(道)라고 여긴 듯 하다.
각설하고.
단순히 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려 왕조를 통째로 무너뜨린 역성혁명가(易姓革命家) 정도전이 가슴에 새겼던 최고의 가치는 이랬다.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는 의미다. 정도전이 25세 때 연이어 부모를 잃고 3년 시묘를 살 때 정몽주에게 선물받은 ‘맹자(孟子)’에 담긴 글이다. 고스란히 삼봉의 가슴에 각인된다. 그 후 이성계와 연대해 조선을 건국하고 이방원에 의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순간도 잊지 않은 세 글자가 ‘민위귀(民爲貴)’다. 백성이 가장 귀하다.
그가 꿈꿨던 나라의 중심에는 백성이 있었다. 백성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군주도 있는 법이니까. 젊은 날 그의 뇌리를 쳤던 글귀는 ‘서경(書經)’에도 있다. ‘천시자아민시 천청자아민청(天視自我民視 天廳自我民廳)’. ‘백성의 눈이 하늘의 눈이요, 백성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다.’ 이 평범한 진리가 현실에 뿌리내리기 어려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조선이라는 국가의 시스템을 마련하고도 고종에 이르러서야 관직이 회복된 미완의 혁명가, 정도전.
삼봉 가고 616년.
시스템 부재의 국가에서 피우지도 못하고 진 어린 꽃송이들의 피눈물을 보며 작금의 위정자에게 묻는다,
‘백성이 가장 귀(民爲貴)한가, 눈에 뵈지도 않는 존재(民爲鬼)인가.’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