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돼지고기가 늘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엔 특정인만 먹는 고기로 분류돼 서민들은 접하기 힘든 식재료이기도 했다. 1123년 송나라 사신단의 일원으로 와 한 달가량 개경에 머물며 고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던 서긍(徐兢)은 그의 책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당시 육식문화를 이렇게 적고 있다. ‘고려는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相臣)이 아니면, 양과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使臣)이 오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맞추어 사용했다.’
말은 군사적으로, 소는 농사에 필요한 이유로 길렀지만 돼지는 곡물을 축내는 가축으로 인식돼 천대받던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귀한 고기’라는 개념보다는 ‘안 먹는 고기’라는 의미로 분석된다. 고려 후기 몽골의 영향을 받아 육식 문화가 새롭게 부활했을 때도 그 중심은 소고기였다.
조선시대에도 인기가 없던 것은 마찬가지다. 1417년 윤 5월 태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조선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조선 사신에게 쇠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돼지를 많이 기르지도 않았다. 1488년 조선을 방문했던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쓴 조선부(朝鮮賦)에는 조선에서는 집에서 돼지를 기르지 않으며, 목축에는 염소를 볼 수 없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1759∼1824)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돼지고기에 대해 ‘본디 힘줄이 없으니 몹시 차고 풍병(風病)을 일으키며 회충(蛔蟲)의 해를 끼치니, 풍병이 있는 사람과 어린아이는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적고 있다. 비인기 육류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던 셈이다.
지금으로 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1905년 우리나라에 개량돼지가 들어온 뒤 불과 한 세기 만에 이루어진 변화여서 더욱 놀랍다. 전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중국인 못지않게 돼지고기 사랑이 뜨거우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삼겹살에 대한 선호는 세계적으로도 유별나다.
이런 삼겹살가격이 2011년 이후 최고라고 한다. 덕분에 업소가격도 오르고 있다. 서민들은 이래저래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라는 제안이 부담스런 요즘이다.
/정준성 논설실장